다시, 민주주의를 생각함

2025-03-05     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우리는 민주주의를 목이 터지라고 외쳤지만 실제로 그걸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수년 전에 한 선배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독재 타도와 민주 쟁취를 입에 달고 살았음에도 가정이나 학교, 사회에서 실제로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아니 민주주의를 말하면서 선배들의 독재를 묵인하고, 후배들에게 같은 모습을 보인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훨씬 나아졌는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회의는 더 나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사람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며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흰 도화지에 저마다의 점을 찍어서 완성하는 점묘화와 같지요.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몇몇이 정한 결론에 짜맞추는 형식적인 회의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가 생각납니다.
TV를 통해 그가 이끄는 회의를 보면서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녀노소,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손을 들면 발언권을 주었으며 그 회의가 일주일 동안 진행됐으니까요. 경직된 분위기에 자유로운 의견 개진이 힘들고, 또 짧은 시간 안에 결론을 내야 하는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유명 TV 프로그램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면서 타인의 곤경을 즐기고, “부자 되세요”라는 TV 광고문구는 전 국민의 인사말이 되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할 필요는 없고, 결과만 내”라는 말도 흔히 쓰입니다. 과정은 따지지 않을 테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과만 내라. 돈 많이 벌어서 너만 잘 살라는 말로 민주주의가 압살(壓殺)당하는 사회입니다.
나라가 남북으로, 동서로 갈린 것도 모자라서 점점 더 분열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건 이상하거나 나쁜 일이 아닙니다. 누구든 자유롭게 말하고, 그것이 나와 다를 땐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난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생각해”하고,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며 자신의 논리를 펴는 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자신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죽일 놈이라고 악다구니를 칩니다.
이런 현상이 무섭고 두렵습니다. 해방공간에서 좌우로 나뉘어 서슴지 않고 서로를 죽이던 일이 생각나서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 고 홍세화 선생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희망을 저분은 갖고 있을까? 궁금했지요. 그때 “지금은 선동만 가능하고, 설득이 되지 않는 사회”라던 홍세화 선생의 말이 가슴 아팠습니다.
“언제, 어떤 계기로 페미니스트가 됐나요?” 남자 전업주부로 살면서 수없이 마주친 질문입니다. 고등학생 때 학교에 다녀와서 배가 고팠습니다. 엄마한테 라면을 부탁했더니 엄마가 여동생을 시켰지요. 그때 ‘쟤도 똑같이 새벽에 일어나고, 학교에 다녀와서 피곤할 텐데 왜 내가 먹을 라면을 삶아야 하지?’ 하는 생각에 미안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스스로 해결했으며 여동생이 “오빠 나도” 하면 넉넉하게 끓였습니다.
혼인할 때 아내와 몇 가지 약속을 했습니다. 나이 차이와 상관없이 부부는 동격(同格)이니까 서로 존대합니다. 수면 습관에 따라서 아침밥은 내가, 저녁밥은 당신(아내)이 준비합니다. 처가와 시가를 차별하지 않습니다. 육아는 부모의 몫이고, 당신의 형편이 어렵다면 내가 맡겠습니다. 서로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합의가 되지 않으면 보류합니다. 등등. 그것을 32년째 이어오고 있습니다.
백년지대계라는 교육에서도 밥상머리 교육이 으뜸입니다. 각 가정에서부터 구성원의 나이, 성별과는 상관없이 개개인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수렴(收斂)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디 사내자식이 질질 짜’라거나 ‘말 만한 계집애(여자)가’ 혹은 ‘어린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게. 너 몇 살이야?’라는 말은 머릿속에서 지워야겠습니다. 그런 생각과 말들이 용산의 괴물들을 만들어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