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선물한 집, 새로운 시작의 공간(3)
유럽미장을 직접 배워가며 시공해보는 DIT(Do It Together)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광주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유럽미장 교육 및 시공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를 찾을 수 있었다.
강사분들과 함께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하고, 인스타그램에 공지를 올리자마자 하루 만에 10자리가 마감됐다.
보통 원데이 클래스로는 작은 캔버스 하나를 채우는 게 전부인데, 이렇게 실제 건축 공간에서 직접 시공해볼 기회가 워낙 드물단다.
선생님께서 “보통 1인당 수백만 원을 내야 들을 수 있는 수업”이라며, 이런 기회를 가진 것 자체가 굉장히 행운이라고 하셨다.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이런 기회를 재미있어할까?’ 싶었던 내 고민이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워크숍 당일, 낯선 방식에 “망치면 어쩌지?”하고 주저하던 손길들도, 곧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과감해졌다. 누구 하나 정해주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빈틈을 채우고 서로 역할을 나눠가며 벽과 천장을 채워나갔다.
미장칼을 잡고 반복적으로 문지르다 보니 머릿속이 텅 비고, 묘한 몰입감이 들었다. “명상하는 기분”이라는 참여자들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는 높이 손을 뻗어 천장을 마감하고, 누구는 벽면을 따라 조심스럽게 패턴을 만들어나갔다. 작업이 계속될수록 손끝의 감각이 익숙해지고, 힘 조절이 자연스러워졌다. 미장칼이 벽 위를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사람들의 호흡도 함께 맞춰졌다.
이틀간의 작업 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만났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과 해남에서 사는 사람들이 반반 섞였고 콘텐츠 기획자, 그래피티 아티스트, DJ, 빵집 사장님, 미술 심리 교육자, 창업지원 프로그램 매니저, 감 농원 사장님, 전통장 사장님까지. 각자 생업은 달랐지만, 한 공간에서 같은 벽을 마주하며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가 오갔다. 예상하지 못했던 즉석 그래피티 공연도 열리고, 단순한 벽 마감 작업이 아니라, 삶의 한순간을 공유하고 연결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 꼬박 작업한 끝에 모든 벽과 천장이 완성됐고, 사람들이 떠났다. 다음 날, 감사한 마음과 감탄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두어 시간 동안 그저 벽을 바라봤다. 유럽미장으로 마감된 벽이 고요하고 단단하게 공간을 감싸고 있었다.
이 집은 이제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때와는 꽤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흔히들 “집 짓다가 10년 늙는다”라고들 한다. 벌써 한옥을 싹 뜯어고친 게 두 번째이니 해남 와서 20년은 늙게 된 걸까? 처음 예상한 것보다 시간과 돈이 더 많이 들어간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 공사는 WAKA를 고칠 때와는 마음가짐이 달랐다. WAKA 때는 “이게 맞는 걸까?”, “돈을 이만큼나 써도 되는 걸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나한테 좋은 집을 선물하자”는 단순한 목표가 있었고, 그래서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단열이 안되는 집에서 온도와 습도에 맞서가며 사는 게 당연했던 내가, 이제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를 묻고 있었다. 내가 건축주이자 디자이너자 현장 소장인 상황. 매일 현장에 나와 일하니 몸은 고단했지만, 이 과정 자체를 불안이나 부담으로 느끼지 않았다.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내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집을 짓는다는 건 비용이 드는 일이지만, 그것을 내 삶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니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됐다. 이번 공사가 끝나면, 나는 이 집에서 새롭게 시작할 것이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추억들을 채워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