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80 | 우리곁에 온 부처, 혜당스님(황승우)의 자서전(1)
마을은 큰 내와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있었다. 내에 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다리밑에 배가 닿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마을을 배다리라고 불렀다. 해남군 북평면 배다리. 해남읍 성도암의 혜당 스님(황승우)이 태어난 곳이다.
승우네 집은 가난했다. 중학교 진학도 포기해야 했다. 그 무렵 중학교에 갈 학생들은 수업후에 과외지도를 받았다. 승우와는 상관없는 수업이었다. 그런데 담임 김창수 선생님은 승우를 과외수업에 참여시켰다.
500쪽이 넘는 <모범전과>를 다 외우다시피 하던 학생이었으니 선생님도 아쉬움이 컸던 것이다. 승우는 밤이면 불을 끄라는 아버지의 성화때문에 몰래 석유등을 들고 마루에 나와 공부를 할만큼 공부에 몰입했다. 승우의 성적은 눈부시게 향상했지만 졸업후에는 갈 곳이 없었다. 승우는 6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던 김창수 선생님을 찾아갔다. 다시 6학년에 다니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해서 승우는 졸업했던 초등학교를 다시 다닐 수 있었다. 공부를 하고싶어하던 어린 승우의 마음도 대단하지만 그런 의지를 키워준 김창수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도 대단한 분들이었던 듯하다.
승우는 중학교에 먼저 진학한 학생들보다 한 가지라도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 천자문을 외워 쓰면서 붓글씨도 익혔다. 아버지도 승우의 뒷바라지를 위해 갖은 애를 쓴다. 그렇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중학교 진학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승우는 마침내 집을 나섰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한다는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갔다. 그러나 상처만 입고 돌아와야 했다.
이와 같은 어려운 가정환경은 나중에 승우네 가족이 해남을 떠나 광주로 이사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승우가 서울에서 돌아와 막막하게 지내고 있을 때 고등공민학교가 세워진 것을 알게 됐다. 이 학교는 신월리 마을회관과 초등학교 창고를 빌려서 중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에게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있었다. 조행복(한문) 김관수(국어) 김행선(영어) 손갑태(수학) 신관희(사회) 등 고향의 선배들이 교사로 봉사하고 있었다. 승우는 담임 선생님이었던 김창수 선생님의 도움으로 고등공민학교에 다니게 된다. 김창수 선생님은 승우에게 부모같은 선생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호에서는 승우가 소년가장이 되어 행상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이야기가 전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