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처럼 화내며 나비처럼 공진화할 혁신이 필요한 때

2025-03-31     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땅끝아해 대표
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땅끝아해 대표

 

 그럼에도, 꽃처럼 화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추운 날 그러모아온 온기를 웅크렸다 내보이며 변화하게 하는 힘. 화기의 초본형이 꽃화 아니던가. 오늘처럼 안개 자욱하고 마음 어둔 날에도 따뜻한 노란 트럼펫을 불며 환하게 이 땅을 밝히는 수선화들. 희고 붉은 꽃사태들. 한의학에서는 오행 가운데 심장을 화기의 근본으로 보는데, 특히 세치 혀를 심장이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았다. 
즉 말이 인체의 화기가 드러난 것이라니, 살리는 말이 있고 죽이는 말이 있듯 지금의 불도 그렇게 타고 있다. 화를 삼키며 옥상옥 헌재의 입을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난 천불처럼. 오래 기다리던 소식이 부디 화마가 아니라 꽃이기를. 
분명한 인재가 천재지변처럼 번지며 하늘의 해를 가리는 지금 동녘 벗들의 밤새 안부부터 묻는다. 작년 이맘때 해남에 와 강의를 해주었던 영양의 우동걸 박사는 멸종위기종복원센터 앞까지 산불이 근접해, 밤사이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으로 동물들을 모두 대피시켰다고 한다. 
해마다 아이들과 하회마을에서 해남 새들의 노래마을로 놀러 오는 친구네도 대피소에서 몇 날을 보내고 있단다. 다른 누군가는 목숨을 잃거나 목숨 같은 삶의 터전을 잃었다. 건조한 봄이 먼저 오는 경상도가 피해가 컸지만 다음 봄은? 내 이웃이거나 내 차례일 것이다. 인간만이 아니다. 이제 막 동남풍 타고 날아온 새들은 도망갔을까? 겨울잠에서 깬 야생동물들은? 목줄이 묶인 채 타버린 반려견, 목줄만 풀어줬어도. 
낮과 밤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지났다. 때맞춰 봄비 같은 소식을 기다린다.
뒷산 달마산 자락엔 2대째 농약을 치지 않고 가꿔온 매화밭에는 겨우내 벌들을 살리고자 벌통째 이곳에까지 와 겨울과 봄을 나는 벌꾼이 있다. 전 지구적으로 눈에 띄게 사라지니 이제 꿀벌 농사는 멸종위기종을 지키는 일이 됐다. 그래서 이맘때면 꽃구경 눈호사보다 꽃아래 가득한 붕붕 벌소리를 들으러 간다. 레이첼 카슨이 경고했던 ‘침묵의 봄’이지만 감사하게도 계절풍을 타고 새들은 날아왔다. 지난주 새벽에는 히-히- 호랑지빠귀가 들렸다. 옛사람들은 귀신새라고 여겼다지만 호랑이가 물어갈 놈들을 일러주는 작은 호랑이 요정 소리로도 들린다. 새소리 벌소리를 들으면 큰 안심이 된다. 봄이 온다고 분명코 봄이 왔다고. 강제 음소거 당한 작은 생명들의 목줄을 끊고 여기저기 가득한 배경음이 되는. 이런 소리들이 지구별의 봄 소리다. 오랫동안 지구의 맥박과 함께 제 몸의 소리를 내온. 자연과 평화는 결코 조용하지 않다. 우리는 이번 겨울, 평화는 조용한 것이 아니란 것을 배웠다. 응원봉과 마이크를 들고 춤추며 제 목소리를 내는 광장과 남태령의 농부와 노래방 노동자 백수 이민자들의 목소리. 그들이 꽃처럼 화내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꽃사태를 보았다. 
이 십년 전 기록적인 화마가 지나간 봄, 바다 끝 양양 낙산사에 산불 조사를 간적이 있다. 숯덩이가 된 나무 아래로 둥글레 꽃들이 속절없이도 피어났다. 그 이후로 봄마다의 산불에도 예산 따오기에만 급급한 처방들이 지금의 재앙을 불러왔으리라. 이 절망 속에서도 꽃들은 피어나고 다른 세상을 불러올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의 나중은 없다. 이번엔 진정한 대변혁이 필요하다. 중생대 지구에 첫 꽃이 피었을 때 밤에만 날던 나방들 일부가 나비로 변신해 다종다변한 공진화를 이끌어 냈듯이, 홀로세의 인간이 망쳐버리고 있는 이 행성 동아시아 끝과 시작점에서 우리는 또 다른 꽃사태와 나비효과를 불러와야만 한다. 제 밥그릇에만 연결된 보이지 않는 목줄을 제 스스로 끊고 보이지 않는 더 큰 연결자가 되는 나비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