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이고 싶지만, 잘 살고 싶다

2025-04-07     김지영/눙눙길 청년마을 대표 공인회계사
                          김지영/눙눙길 청년마을 대표, 공인회계사

 

 집 짓다 10년 늙는다는 말의 무게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해남생활 4년차, 그동안 두 채의 집을 고쳤다. 한 채는 WAKA라는 한옥스테이였고, 또 다른 한 채는 이제 막 완공을 앞둔, 나 자신에게 주는 집이다. 집을 고친다는 건 단순히 공간을 다듬는 일이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왜 여기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매출은 아직 부족하고, 갈 길은 먼데, 왜 계속 이 일을 붙잡고 있는가. 때로는 혼자 남은 것 같은 고립감이 들기도 한다. 이 길 끝에 내가 원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도는 날이 많았다.
무언가 새로운 일을 한다는 건, 누군가의 기대를 마주하는 일이기도 했다. 해남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내가 하는 일들이 지역에 도움이 되고, 의미 있는 일로 여겨졌으면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됐다. 내가 ‘잘 보이고 싶은 대상’은 실체가 없는 무언가였다는 것을. 누구에게는 좋은 사람이지만, 누구에게는 불편한 사람일 수도 있다. 내 의도와 상관없이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고, 다른 누군가에겐 부족하다. 그렇게 욕을 먹고 칭찬을 받는 일은 내 노력과는 무관하게 흘러간다. 
“고향이 어디오.” 
“저는 아버지가 군인이라 계속 이사를 다녀서, 딱히 고향이라고 할만한 곳이 없어요. 성인이 되면서부터 제일 오래 산 곳은 서울이고요.”
“이제 해남을 고향 삼으면 되겠구만! 해남에 인재가 왔네”라고 얘기하며, 해남 발전을 위해 많이 노력해달라던 사람이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래도 큰일은 지역 사람한테 맡겨야지”라고 언급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곳과 저곳, 이 사람들과 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비슷한 감정이 남는다. 어느 지역에서도 딱히 소속감을 느껴본 적이 없고, 늘 언젠가 떠날 사람의 위치였다. 아니라고, 나를 받아들여달라고 외쳐 보고 싶지만 그 인정 역시 실체가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잘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결국 내가 나를 온전히 보지 못할 때 더 커진다는 것도. 그러니 나는 그저 지금을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다. 떠난 사람들은 틀렸고, 남아있는 사람들의 삶이 더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나는 이 자리에 더 오래 머물기로 했고, 그 안에서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됐을 뿐이다.
착한 딸로, 모범생으로, 충실한 직장인으로 나를 정의하며 살아왔다. 무언가 잘못되면 얼른 해결해야 할 것 같았고, 문제가 생기면 그 책임도, 수습도 모두 내 몫이라 여겼다. 그게 책임감이라고 믿었지만, 돌아보면 조바심이었다. 일이 어그러질까 봐, 흐름이 멈출까 봐, 내가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 무게까지 등에 올려놓고 있었다.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모든 걸 완벽하게 컨트롤하지 않아도 괜찮다. 흘러가는 일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충분하다. 조바심을 내려놓으니, 마음 한켠에 늘 켜져 있던 긴장이 서서히 풀린다.
무리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내 중심을 지키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 그것이 가장 나다운 삶이라는 걸 배워가고 있다. 나를 지키는 일은, 결국 내가 나를 사랑하는 방식의 실천이다. 
내가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삶이 내게 천천히 가르쳐주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알아차린 것들을 조용히 내 안에 둔다. 
애써 진심을 설명하려 하기보다는 매일을 내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보여주려 한다. 그게 가장 조용하고도 깊은 메시지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그걸 알게 해준 건, 내가 스스로 만든 길과 선택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