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인심과 땅끝해안선의 숨구멍들

2025-04-21     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 땅끝아해대표
윤지선(해남탐조모임새봄 활동가, 땅끝아해 대표

 

 2014년과 2025년 그해 봄의 기시감. 부디 잊지 말라고 사오월 달력 날짜가 같다. 11년 전 수요일에 떠난 아이들은 금요일에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이 침몰하고 쓸쓸히 져가는 꽃들이 물음표로 질문한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은 지난 계엄사태 이후 최근 파면 선고까지 이어졌다. 우리 안의 모든 윤석열스러움을 몰아내자는 선언이고 태도는 바람의 방향을 바꾼다. 
유난한 계절풍이 부는 땅끝, 독수리 무리들은 산줄기를 타고 몽골로 올라갔고, 남쪽바다 건너온 제비들이 신접살림 둘 집들을 보러 다니고 있다. 바닷가 송지면 제비 인심 좋은 상가는 지금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걸 보면 제비들의 안목은 그 어떤 점사보다 용하다. 인적 드문 빈집에는 집을 짓지 않고 생기 도는 부지런한 집만 골라 둥지 삼는다. 한입씩 진흙을 물어오는 그들처럼 죽이지 않고 살리는 공존의 토목공사를 할 순 없을까?
산불을 면한 안동 친구 가족과 송호해변에서 만났다. 땅끝 아해 아이들은 올해 첫 입수를 했다. 조금 풀린 봄볕에 아이들은 끊임없이 흙을 파고 얕은 물을 첨벙이며 물과 뭍을 오간다. 하지만 이번 봄은 허전했다. 자연스레 복원돼야 할 갯골과 조수웅덩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 많던 게구멍들도 자취를 감췄다. 숨이 막혔다. 인공 모래가 북돋아진 해변엔 별자리처럼 흩어진 숨구멍이 없다. 모래를 이렇게 부으면 콘크리트와 다를 게 뭔가.
송호해변 큰 소나무 아래는 1938년 조선총독부 학도래지 표지석이 남아있다. 달마산의 삼각주였을 송호의 너른 만은 바위와 뻘 사이 천연의 금모래 은모래가 반짝이는 풍요로운 기수지역, 수많은 두루미들이 너울너울 학춤 추는 진광경에 일제조차 기념석을 놓은 곳이다. 
그 황홀했을 흰 깃털 옷은 환자복을 잠시 벗어놓고 살아보겠다고 맨발어싱을 하는 이들의 운동복으로 바뀌었고, 긴 방파제는 파도반사를 불러와 자연스런 해안사구는 교과서에나 나오는 개념이 됐다. 아이 키우던 시절 뻘에서 찬거리를 건져오던 할머니들이 먼저 알려주셨다. 방파제를 길게 뽑고 나니 뻘이 썩어서 그 많던 조개며 낙지며 이젠 나오지 않는다고. 백년도 안 된 사이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어버린 것인가. 
봄엔 개구리만이 아니라 겨울잠 자던 작은 도둑게들도 깨어난다. 송지천을 타고 올라온 게들은 곧 산정 장터와 송지초 운동장을 돌아다니다 적당한 흙사면에 굴을 파고 잠든다. 땅끝해안로는 작년 올해 긴 토목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군사기지 논란이 됐던 산정리 노루목부터 중리와 대죽리까지 도로 직선화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게들은 기수지역을 정화시키는 환경 파수꾼이다. 어떻게 공사가 마무리될지 모르지만 육지게들의 집터도 배려하는 마무리가 되길 바란다. 
송지중고등학교가 자리잡은 미야저수지를 피난처 삼아 오가던 노랑부리저어새 무리들을 이맘때까지도 볼 수 있었지만 공사가 길어지면서 해마다 오던 이 저수지에서 쉬지 못하고 멸종위기의 새들은 터를 옮겼다. 학교의 상징 새로 삼고 학생들과 함께 모니터링하자고 제안해봐야지 기다렸는데  때를 놓치고, 이번 겨울 먹이가 사라진 저수지를 다시 찾아줄 것인지 조마조마하다. 십년사이 개체수도 서식처도 확 달라져 회복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침몰해가는 마지막 아름다움을 본 죄로 다시 돌아온 봄 지난 십여년의 교훈을 되묻는다. 강산이 변하기까지 사라진 사이의 존재들이 생명을 불러오는 길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