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깊은 해남이야기 82 | 우리 곁에 온 부처, 혜당스님(황승우)의 자서전

2025-04-21     글,그림=김마루(향우, 웹툰작가)

 

 가족이 사흘을 굶었다. 솥에 맹물을 붓고 끓이던 어머니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를 부르며 통곡했다. “엄마 울지마. 우리 식구들 내가 살릴거야” 승우는 울면서 말했다. 지우가 갓난아기때 베고자던 베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좁쌀이 있었다. 좁쌀을 팔아서 빨랫비누랑 바늘을 샀다. 그리고는 거리로 나왔다. 이것이 행상의 시작이었다. 
가족이 먹을 쌀을 사기까지는 네 시간 다섯 시간을 걸었다. 비누 한 장을 팔기 위해서 스무집 이상을 돌기도 했다. 행상을 마친 뒤에는 책과 함께 밤을 새웠다. 영어에 자신이 생기자 수학공부에 집중했다. 서울대 교수의 <해석>과 <기하>를 닳도록 팠다. 마분지를 18절로 나눠 20~30cm높이로 쌓아놓고 여기에다 수학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빨랫비누를 팔러다니는 중에도 수학문제를 풀었다면 믿어지는가? 
골목을 다니다보면 대문이 열려있는 집이 있다. 승우는 잠입해 들어간다. 툇마루 귀퉁이에 앉아 수학 문제집을 펼친다. 그리고는 한 문제를 골라서 풀기 시작한다. 주인을 불러 비누를 파는 일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그 무렵 황금동에 대입 영수학원이 생겼다. 영어는 <영어구문론>을, 수학은 <고2 교과서>를 수강했다. 이미 독학으로 끝낸 교재들이라서 공부는 식은 죽 먹기였다. ‘배운 것 다시 배우기’가  최상의 공부방법이라는 진리를 터득하는 기회였다. 이때 우연히 만난  미군 장교에게서 영어회화도 배웠다. 장교는 탁월한 영어 교사였으나 일반 과목의 10배나 되는 수강료가 부담이 됐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외국 영화를 보면서 영어회화를 익히기로 한다. 영화관 직원들의 도움으로 영화는 공짜로 보았다. 영화관 출입은 1년 가까이 계속되었다.
운명은 승우를 더 단련시킬 계획이었을까? 승우가 다니던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장학금이 끊어졌다. 아버지의 빚을 정리하느라 집까지 비운 승우네는 수레집 작은방으로 옮겨 앉았다. “가난때문에 배움을 저버리지 말라. 가난해도 배우면 성공할 수 있다”는 명심보감의 말씀을 의지했다. 
그 무렵 승우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도서관을 발견했다. 그곳은 산수동 공동묘지였다. 무덤 앞에 놓인 윤기나는 상석은 둘도 없는 책상이었다. 승우는 상석 위에 책을 펼쳤다.(글은 혜당스님의 자서전「가시밭도 밟으면 길이 된다」를 요약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