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세 할머니…정원은 삶의 여정이었다
호산마을 윤순양 할머니 작은 화단에 수십 종류
옥천면 호산마을 윤순양(81) 할머니의 집 마당 정원은 이야기가 있다. 누가 가져다줬고, 언제 심었고, 어디서 샀고, 어떻게 자랐는지 꽃마다 이야기를 품은 채 할머니와 삶을 동행한다.
마당 정원은 남편이 화단을 만들어 주면서 시작됐다. 벽돌을 쌓고 흙을 부어 만든 화단에 할머니는 꽃을 심고, 또 꽃을 심었다. 이제는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다양한 꽃들이 정원에 놓여졌다.
결코 웅장하고 거창한 정원이 아니지만 마당 정원의 꽃들은 할머니와 함께해온 동반자이다. 봄이면 홍매화가 붉은 기척을 알리고, 화려한 철쭉이 할머니를 맞는다. 목단은 해마다 조금씩 더 풍성해진다.
다육이와 허브, 제라늄과 라일락, 철쭉과 수국, 양귀비와 목단까지. 윤순양 할머니의 정원에서 자란 꽃들은 모두 이야기를 품은 채, 할머니와 마주한다.
강진 군동면이 고향인 할머니는 처녀 때부터 꽃을 참 좋아했다. 젊은 시절부터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할머니는 좋은 나무가 있으면 터에다 심어두곤 했다. 그렇게 평생을 꽃과 함께해온 삶은 어느새 작은 정원으로 자라났다.
목단, 철쭉, 수선화, 매발톱, 라벤더, 수국, 양귀비까지. 때로는 손주가 사다 준 카네이션이, 때로는 시장에서 데려온 베들레헴 꽃이, 사랑초와 백합, 나리꽃이 차례로 계절을 잇는다. 이름 모를 들꽃도 있고, 양귀비꽃처럼 화려한 것도 있다.
할머니에게 정원은 단지 보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손으로 만지고, 매일같이 교감한다.
할머니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정원에 나와 미모사에 ‘후’ 바람을 불어 장난을 친다. 그리곤 화단을 한 바퀴 돌며 꽃들과 대화하는 그 시간이 좋다.
식물의 특성에 따라 겨울에는 거실로 들여 보살핀다. 마당에 오래된 유리 냉장고를 재활용한 유리온실이 있다. 이곳에는 주로 다육이, 제라늄, 선인장 등 섬세한 보살핌이 필요한 화분들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큰 다육이는 처음 본다’고 감탄하고, 누군가는 로즈마리 향기에 발걸음을 멈춘다.
마당에는 손때 묻은 플라스틱 화분도 있고, 딸이 주워다 놓았다는 오래된 시루도 있다.
정원을 돌보는 일은 할머니에게 즐거움이자, 가족과 함께 나눴던 기억이기도 하다.
윤순양 할머니는 “딸 넷, 아들 하나, 손주들도 꽃을 좋아해. 오면 다 예쁘다 하지”라며 웃음을 짓는다.
윤순양 할머니의 정원은 거창한 정원이 아니다. 누구나 지나가며 볼 수 있고, 누구나 웃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정원이다. 계절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이 끊임없이 할머니에게 행복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