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해남이야기 83] 우리 곁에 온 부처, 혜당스님(황승우) 자서전(제4회)
승우네 형편으로 갈 수 있는 학교는 육군사관학교뿐이었다. 육사에 가려면 물리와 화학이 필수과목이었다. 승우는 봄부터 가을까지 일곱달을 공동묘지를 찾아가서 물리와 화학 과목을 붙들고 씨름했다. 주말이면 이논규라는 친구가 공동묘지로 놀러오곤 했다. 그 친구에게서, 난공불락의 성이었던 과학을 정복하는 비결을 배웠다. 아무리 급해도 교과서에서 원리를 파악한 후에 문제집을 봐야 한다. 인생도 천천히 가는 길이 더 확실한 길이다. 승우는 친구에게서 소중한 교훈을 배울 수 있었다.그 무렵 승우네는 산수동 시장에서 채소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승우는 돈이 필요하거나 동생들에게 무얼 사주고 싶을 때는 장사를 나갔다. 그러나 광주에서의 행상은 푼돈벌이 밖에 되지 않았다. 승우는 장거리 행상에 나서기로 했다. 타향살이는 일곱차례나 계속되었다. 전북 고창·부안·보길도·거문도·흑산도에 이어 제주도까지 건너갔다. 승우가 타지에서 고학을 하면서 겪은 이야기는 황승우의 자서전「가시밭도 밟으면 길이된다」(2015, 도서출판 책가)에 깨알같이(81쪽~111쪽) 담겨있다. 고난으로 얼룩진 타향살이가 끝나고 꿈에도 잊지 못하던 육군사관학교 필기시험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평발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승우는 진로를 과학 선생님으로 바꾸고 광주사범대학에 들어갔다. 턱없이 부족한 생활비에 학자금 부담이 더해졌다. 승우는 다시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이번에는 여관 장사패에 들어갔다. 자전거에 물건을 싣고 여관을 순회했다. 새벽 4시부터 아침 7시까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저녁 장사에 나서 밤 11시에 돌아왔다. 승우는 전공인 과학수업외에도 영어에 몰두했다. 선교사 사택에서 영어성경을 배우고, 교육사절단으로 와 있던 미국인을 찾아가 영어 회화를 배웠다. 언젠가는 미국 땅, 영국 땅을 밟을 날이 오리라. 독학한 영어로 그들을 가르치리라. 먼 훗날, 승우의 이런 다짐은 모두 현실이 된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교환 교수가 되고, 미국, 호주, 뉴질랜드, 네팔로 다니면서 영어로 불교의 참뜻을 알리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