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어린이들과 생명 민주주의를 지켜주세요
땅끝아해 대표
요즘 시동을 켜기 전 바퀴 아래 작은 새가 있지 않은지 꼭 확인해봐야 한다. 새들의 이소, 이른바 둥지 옮김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늦게 둥지 트는 철새들도 있지만 딱새와 할미새 같은 작은 텃새들은 이른 봄부터 부지런히 키워내 이제 막 둥지를 벗어나 날개짓을 시작하고 있다. 아차차, 안전한 차 아래라고 여겨 몸 숨기고 있다가 퇴근길에야 납작해져 있는 어린 것을 발견하는 슬픔.
둥지를 벗어난 어린 새는 어리바리하다. 처음 만나는 인간과 차가 무서운 것도 모르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멀뚱멀뚱 쳐다보며 날아갈 생각도 않고 있다. 근처 나뭇가지나 전깃줄에서 피윳피윳 경계음을 내는 어미만 속이 탄다. 엄마의 경계음을 듣고 둥지를 옮기며 첫 날개를 펴고 첫 사냥 첫 세상살이를 배우는 작은 아이들.
어찌 새라고 우리 인간 아이들과 다르겠는가. 엄마 새들은 아기 새들에게 “인간은 위험해!”를 외치고, 어른 인간들은 어린이들에게 “자연은 위험해”라며 실내에 가둔지 오래. 그래선지 시골에 살아도 풀과 흙을 맨손으로 만지기도 무서워하고 벌레만 봐도 기겁하는 아이들이 많다. 종종 비닐 끈을 모아와 둥지 짓고 쓰레기를 뒤지는 새들처럼, 플라스틱 인공세상만 만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못내 서글프다. 아이들은 인조 잔디와 가짜 꽃이 아니라 부드러운 진짜 꽃잎을 만져야 하지 않을까.
점점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아이들에게 진짜 자연을 만지게 해주고 싶다. 요즘 피는 붓꽃은 그 자체로 풍부한 천연물감이라, 아이들과 시원한 촉감과 색을 내는 천연의 붓꽃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과 이렇게 자연의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 같은 풍경 속에 드는 삶을 꿈꿔왔다. 모내기철을 앞두고 논갈이 하는 들녘에는 너울너울 백로류들이 트랙터를 쫓아다니는 풍경조차 아름다워서 아이들과 그 속에 귀한 황로도 찾아본다. 대흥사 산책길만 가도 흰배지빠귀 되지빠귀가 새끼를 데리고 다니면서 낙엽을 뒤적이며 첫사냥을 가르치는 모습도 보여주고 싶다.
오늘 송호초와 어란진초의 통합 운동회 속에 어른들이 그랬다. 내 아이와 함께 곁에 있는 다른 아이들을 챙기는 다정한 이웃이자 어른들이 다른 존재들도 배려하는 다정한 지구인이 될 수 있으리라. 내 새끼 지키자고 다른 아이를 무시할 수 없듯이, 모두가 예비 피해자이자 예비 가해자가 될 수 있는 무서운 세상 아니던가.
탁란을 선택한 뻐꾸기조차 사정이 있다. 다리가 짧아 알을 품을 수 없다. 어리바리한 우리집 어린이를 지키려면 다른 집 아이들에게도 다정한 이웃이어야 하고 다른 존재들의 생태를 이해하고 공존해야 한다.
오월이면 도로 위 판박이가 되어버린 고양이, 너구리, 매, 개구리가 유독 많이 보인다. 번식에 성공한 어린 동물들이 호기심에 도로를 건너다 매정한 문명의 이기에 치인 흔적들. 그래선지 이 시기면 청년기 대학 시절 우연히 본 5.18 미공개 사진 한 장이 늘 오버랩 되곤 한다.
도로 한가운데 무한궤도에 무참히 깔려 짓이겨진 어느 청년의 얼굴. 이후로 오월이면 타 생명을 깔고 뭉개는 폭압적인 힘은 인간이든 타 생명이든 다르지 않다는 감각을 지니게 된 듯하다. 이른바 생명권의 민주주의. 이번엔 부디 나중에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의 생명들을 소중히 여겨주기를.
우리는 요즘 인권을 이야기하는 여러 후보들을 보고 있다. 공보물 속에서 인권을 말하는 후보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인간의 권리와 책임이란 무엇인가. 누구만을 보호하고 배제하고 있는가. 이제 숨겨지지 않는 행동과 마음들을 보며 우리는 이제 선택을 앞두고 있다. 도시인들보다 작은 땅뙈기 한쪽에 모종 하나라도 심을 수 있는 지역 변방에 살고 있는 해남 사람들의 안목은 열기 속에 올라오는 온갖 풀들 가운데 뽑아낼 것과 남겨둘 것을 가를 줄 안다. 해남 사람들의 눈과 손은 정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