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이 남긴 흔적, 시적 언어로 기록

해남출신 김시림 시인 시집 「나팔고둥 좌표」 발간

2025-06-02     박영자 기자

 

 김시림 시인이「나팔고둥 좌표」라는 시집을 냈다.
「나팔고둥 좌표」는 전체적으로 조용한 목소리의 시집이다. 격한 감정의 변화나 선언적인 주장이 없는 시집. 그러나 그 고요함 안에서 울리는 파장은 깊고 길다. 나팔고둥을 귀에 대면 들리는 바다의 파도 소리처럼, 이 시집도 삶의 작은 숨결과 잊힌 풍경들을 세심하게 길어 올려 우리에게 건넨다. 김시림 시인은 사라지는 것들을 바라보되, 그것들이 남긴 흔적을 더듬으며 시적 언어로 기록하고 존중한다. 그의 시는 감각적이면서도 사유 깊고, 비극을 묘사하면서도 희망의 실마리를 놓지 않는다. 이 시집은 삶이라는 바다에서 귀를 기울일 때 들려오는 나직한 나팔고둥의 울림처럼, 독자의 내면에 오래도록 잔향을 남긴다.
이 시집은 자연과 인간, 시간과 장소가 서로를 비추는 방식으로 구성돼 있다. ‘조등을 걸다’에서는 폭설로 부러진 나뭇가지들 속에서 ‘작고 가벼운 것들도 쌓이고 쌓이니 폭력이 된다’는 문장이 이 시집의 전반적 분위기와 주제를 암시한다. 김시림 시인은 눈송이처럼 무해한 것 조차 축적되면 누군가의 삶을 꺾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작고 평범한 이미지로부터 거대한 통찰을 이끌어 내는 시인의 시적 자세는, 이 시집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유지된다.
김시림 시인은 해남 황산면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한국문학예술」, 2019년「불교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쑥냄새 나는 내 이름의 꿀떡게 바닷가」,「그리움으로 자전거 타는 여자」,「부끄럼 타는 해당화」,「물갈퀴가 돋아난」등을 냈다. 심호 이동주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