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집을 짓는다는 것 - 자기만의 방에서 쓰는 삶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기껏해야 여러분에게 한 가지 사소한 사랑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 즉 여성이 픽션을 쓰고 싶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뿐이었지요.”
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작 ‘자기만의 방’에서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 자기만의 방과 1년에 500파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100년 뒤 자기만의 방과 소득을 가진 교육받은 여성의 삶을 상상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해남에서 자기만의 삶을 살고 있는 세 명의 친구들이 모여, ‘Q농캠프 특집’이란 이름으로 전국에서 온 낯선 여성들을 자기만의 방으로 초대했다.
Q농캠프는 시골살이가 궁금한 여성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2021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특집’은 여성들이 집과 삶을 새롭게 설계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캠프 첫날, 우리는 북평면 아름이네 모닥모닥에 모였다. 고향에 돌아온 아름은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터를 얻어 아지트를 만들었다. 차가 닿지 않는 곳이라 집을 고치고 가꾸는 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의 손길과 감각이 모여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 됐다.
함께 모닥테이블을 차리며 음식을 만들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손발을 맞춰 음식을 차려내자, 어느새 서먹함은 사라지고 마음이 가까워졌다.
둘째 날은 현산면 혤짱네 ‘스페이스 공공공’으로 향했다. 혤짱은 낡은 창고를 손수 고쳐 작업실 겸 공유공간으로 만들었다. 수년간 공동체 농사를 짓던 시절부터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집을 고치며 겪은 이야기는 단순한 리모델링의 기록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자신과 삶의 방식, 사람과 관계를 다시 고민하고 새롭게 짜 맞추는 과정이었다.
창고를 고치는 과정을 담은 짧은 영상은 그 긴 시간을 한눈에 보여줬다. 점심으로 나눈 김밥과 비빔국수도, 대흥사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와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도 그날의 여운을 오래 남겼다.
셋째 날, 우리는 황산면 지영이네에서 만났다. 나는 서울에서 회계사로 살다 해남으로 내려와 빈집을 고쳐 ‘와카’라는 한옥 스테이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옆집을 고쳐 나만의 집을 만들었다. 단열과 방수부터 벽 하나, 바닥 한 장까지 손보고, 안과 밖을 새로 짜 맞추며 그 집은 결국 내 집이자 내 세계가 됐다.
집을 고치며 마주한 일들은 단순한 수리 과정이 아니라 나의 과거와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집에서 우리는 함께 울력으로 창고 외벽을 칠하고, 오일스테인 작업을 하며 각자 자기만의 집을 상상했다. 그 순간, 집은 단지 개인의 공간을 넘어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그릇이 됐다.
여성에게 집을 짓는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래도록 집은 여성에게 ‘돌봐야 할 공간’이자 ‘부담’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제 여성들은 그 집을 자신을 위한 공간, 자기 삶의 무대로 다시 설계하고 있다.
더 이상 타인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자기 삶의 중심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집을 스스로 고치는 행위는 곧 나를 설계하고 돌보는 행위이다. 집을 짓는다는 것은 단순한 물리적 노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새로 짜 맞추는 과정이다.
우리는 각자 집의 한켠을 낯선 이들에게도 열어 뒀다. 집은 결국 혼자만의 공간이 아니라, 다른 이의 삶과 온기를 잠시 맞이하고, 서로의 이야기가 스며드는 그릇이다.
Q농캠프에서 만난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자기만의 집을 꿈꾸고, 자신을 새로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의 문을 열고 타인과 연결될 때, 우리는 그 삶의 무게를 서로 나누며 더 큰 용기와 자유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