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수도 해남’ 그동안 사업의 나열일까?
해남군이 농어촌수도 해남을 기치로 내걸었다. 농어촌수도는 거대 담론적 성격이다. 그렇다면 해남군이 거대 담론을 결정하는데 있어 숙의의 과정이 있었는가이다. 또 이를 실행해야할 해남군청 공무원에게도 거대 담론의 내용이 공유됐는가이다.
하나의 거대 담론을 결정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암묵적이던 공개적이던 담론의 형성과정이 뒤따라야 해남군민 공동의 업무가 된다. 또 이를 진두지휘할 이가 전체 그림을 가지고 장단기 실행계획을 만들고 제시해야 한다.
솔직히 많은 군민들이 농어촌수도가 무엇이고 무얼 지향하는지 궁금해 한다. 지역사회 내에서도 해남군청 공무원들 내에서도 공유하고 숙의의 과정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해남군이 준비한 상태에서 농어촌수도 해남을 표방했다면 처음부터 무얼 담을 것인지가 제시돼야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해남군에서 추진해온 그동안의 사업 또는 진행될 사업의 나열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앞으로 만들겠다는 것도 말이 되질 않는다. 해남군의 미래의 그림을, 하나의 거대 담론을 그렇게 발표하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명현관 군수는 언론인 간담회 자리에서 AI산업과 신재생에너지라는 미래형 산업을 해남의 농수산업과 융합해 새로운 농업소득의 패러다임을 구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AI산업을 어떻게 농업에 융합시킬지 장단기 전략이 나와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신재생에너지를 농업과 융합한다면 어떤 형태로 구축하고 농어민 소득이 어떤 형태로 확장되는지를 포괄적이나마 제시해야 한다.
현재 해남군이 제시하는 농어촌수도는 굉장히 포괄적이다. 농수산물 수출과 저탄소 농업, 기후위기 대응 등이 모두 포괄돼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그동안 진행해 왔다. 농어촌수도를 표방했다면 이 틀을 넘어서야 한다. 해남군은 2030년까지 총 15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규모인 3GW 이상의 인공지능 슈퍼클러스터 허브를 조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세계최대 규모의 데이터센터가 해남을 선택한다는 것은 토지와 전기료가 싸기 때문이다. 기업논리상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러한 시설들을 해남군민들의 삶과 연동시키는 것은 행정의 몫이고 또 그에 대한 대안을 설명해야 하는 것도 행정의 의무이다.
농어촌수도 해남에는 농촌관광도 포함될 것이다. 이는 해남관광정책의 큰 틀의 변화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농업과 어업, 관광, 산업을 포괄한 농어촌수도 해남에는 당연히 변화된 문화관광정책이 포함되고 또 함께 제시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남군의 거대 담론인 ‘농어촌수도 해남’을 공무원들만의 전유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행정의 바탕은 군민이고 군민을 위해 복무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왜 거대담론을 결정하는데 군민들은 없는가. 군민들과 함께 만들고 가꿔가는 거대 담론은 지속성과 능동성을 얻는다.
해남군 1년 예산 1조원 시대, 군민들의 행복지수는 높아졌는가. 여전히 1년이면 1,500여명에 이른 군민들이 해남을 떠난다.
행정은 철학의 영역이다. 철학의 기본은 인본사상이다. 마찬가지로 농어촌수도 해남에도 철학이 흘러야 한다. 농어촌수도 해남은 사업의 영역이 아니다. 해남에 살고 있는 군민의 인본과 가치, 군민들을 중심에 놓고 설계되고 추진돼야 하는 영역이다. 사업 중심의 행정운영은 그동안 시설 중심의 관광정책, 농업정책을 낳았다. 단순 경제적 접근의 사업은 군민의 삶과 무관하게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