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엔 소녀상 대신 마이크 든 할머니상 세우면 좋겠어요

2025-07-29     김지영/공인회계사, 눙눙길 대표
                                김지영/공인회계사, 눙눙길 대표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슬픔의 온도는 세월을 따라 조금씩 희미해지고, 기억은 때때로 형식에 머무른다.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을 떠올릴 때면,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불편함이 머물렀다. 말없이 앉아 있는 그 조각상은 너무나 처연했고, 정형화된 슬픔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왜일까. 나는 왜 그 옆에 놓인 의자에 앉고 싶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는 알겠다. 어쩌면 우리는 소녀상이 아니라, 마이크를 든 할머니상을 세웠어야 했던 게 아닐까.
일본군 성노예 생존자 할머니들은 단지 고통을 겪은 생존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스스로 마이크를 들고 거리로 나와 침묵으로 덮였던 자신의 삶을 말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말들은 단지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차마 아무런 말도 해보지 못한 채 사라진 동무들의 기억까지 꺼내어, 그들의 울음을 대신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 말들은 울고 있는 고백이 아니라, 이름 없이 떠나간 사람들을 이 땅에 다시 존재하게 만드는 행위였다. 그 울림은 너무 강력해서, 한 시대의 침묵을 찢고 우리가 논해야 할 역사와 윤리를 새롭게 만들어줬다.
일본정부는 평화의 소녀상이 반일 상징이라며 철거를 요구하며 꾸준히 외교적 압력을 가하고 있다. 
소녀상은 정적이고, 조용하다. 피해자의 형상으로만 존재할 때, 그 존재는 기억이 아닌 소비가 되었다. 침묵하는 소녀상은 철거하자 우겨댈 수 있겠으나, 마이크를 든 할머니를 멈출 수는 없다.
기억이라는 건 과거를 끌어안는 일만이 아니라, 현재를 어떤 시선으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일이다. 그 점에서 나는 해남에서 만나게 된 118인 희생광부 추모비가 왜 그렇게 마음에 남았는지 알아차리게 되었다. 
80년 전, 광복 직후 제주에서 돌아오던 배에 발생한 의문의 화재사고, 수몰된 광부들. 기록도, 말도 없이 바다로 사라진 이름들. 적당히 슬프고 울분이 차오르지만, 어쩌면 내 일상과는 무관한 옛날 이야기. 
2017년 해남 군민들은 1350의 마음을 모았다. 한 사람당 만 원씩 모금을 했고 그 이름들을 뒤늦게나마 불러주기로 했다. 그 추모비는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맺은 조용한 약속이다. “우리는 이 침묵을 반복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약속. 
작년에는 눙눙길에 모인 친구들과 함께 118인 희생광부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옥매광산 : 별들을 생각하는 밤] 팝업 전시를 만들었다. 광주 충장로로 가서 1.5천명의 관람객과 함께 이 사라진 생을 이야기했다. 올해도 눙눙길은 다람쥐연구소와 함께 ‘바다의 마음으로’라는 전시로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80년 전의 바람과 오늘의 시간을 예술로 잇는 여정을 만들어 가보고자 한다. 그리고 8월29일부터 열리는 추모제와 다큐 상영회에도 마음을 보태어 본다. 
이제 기억의 바통이, 지금 우리에게 넘어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누구에게 마이크를 건넬 것인가. 오늘날의 118인은, 이 땅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일지도 모른다. 옆집에 사는 외국인 노동자일지도, 구부정한 허리로 텃밭을 가꾸는 할머니일지도, 말할 기회 없이 존재하는 수많은 이웃일지도 모른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또 한 번 마이크를 들 수 있을까. 기억은 돌이 아니라, 말을 꺼낼 수 있도록 경청하는 귀와 마음으로 들어와 완성된다. 바라본다. 다음엔, 침묵하는 소녀상이 아니라, 말하는 할머니의 조각상이 우리 광장에 서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