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사업의 덫

2025-08-11     김병덕/민주당 지역위원회 사무국장
김병덕/민주당 지역위원회 사무국장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한정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각 부처가 시행하는 공모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 
우리 해남군도 예외는 아니다. 각종 공모사업 선정 소식이 지역 언론에 자주 등장하며 ‘쾌거’라는 표현으로 치환된다.
그러나 과연 이 공모사업들이 해남의 실정에 꼭 맞는 사업들인지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모사업은 중앙부처에서 주도하는, 일종의 ‘책상머리 정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 실정을 깊이 고려하기보다는 정해진 틀 안에서 지방정부를 관리하고 통제하려는 방식에 가깝다. 
공모사업은 마치 ‘기성복’과 같다. 내 몸에 꼭 맞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수선해서 입어야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최근 각 부처에서 쏟아내는 인구소멸 대응, 청년정책 관련 공모사업들 또한 내용은 비슷비슷하고, 대부분은 건축물과 시설 위주의 사업에 치우쳐 있다. ‘청년창업플랫폼’, ‘청년창업지원센터’ 등의 이름으로 추진된 사업들이 작은 해남 땅에 수없이 들어섰지만, 과연 그 시설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용자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사업비를 따기 위해 만든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농산물가공지원센터도 마찬가지다. 
지역 농산물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취지로 건물, 장비, 인력까지 갖춘 시설들이 여러 곳에 설치돼 있지만, 운영 실태를 들여다보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수백억 원의 군민 혈세로 유지비만 부담하는 ‘전시행정’의 결과물들이다. 
이러한 중복 시설은 행정의 성과주의가 낳은 그림자다.
문제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단순히 ‘공모사업 선정’, ‘국비 확보’라는 문구에 지역사회가 환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군민들은 그 성과 이면에 숨은 낭비와 비효율, 지속 불가능성에 대해 냉철한 시선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해남은 지금 지역소멸과 고령화라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동시에 전국 최대 수준의 경작지,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풍부한 해양자원이라는 비교우위도 갖고 있다.
예전 45%를 차지하던 해남의 마른김 생산 비중은 이제 20% 수준으로 떨어졌고, ‘해남고구마’의 명성도 영암에 밀린 지 오래다. 전국 생산량 70%를 차지하는 해남 겨울배추도 실상은 외지 상인들의 수익으로 돌아가고 있다.
결국 해남의 미래는 다시 ‘농어업’에서 찾아야 한다. 
진정한 지역 발전은 외부 공모사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실정에 맞는 사업을 스스로 발굴하고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공모사업의 덫에서 벗어나 해남만의 맞춤형 정책과 사업으로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