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2025-08-25     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오성근/작가, 성평등과 자녀교육 강사

 

 인간에게 평등한 게 하나 있다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잘난체하는 부자나 권력자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지요. 죽음이라고 해서 다 같은 죽음이 아닙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애달픈 죽음이 있는 반면에 조금씩 잊히기도 하고, 더러는 아무 느낌이 없기도 합니다.
부모님을 제외하고, 늘 생각나는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목포 출신으로 키가 크고, 부리부리하게 생긴 친구였습니다. 
넥타이를 싫어하는 나와는 달리 양복 정장을 좋아했던 그가 10여 년 전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제주에 살면서도 친구의 부친상에는 다녀왔지만 정작 그의 장례식장에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건(정리해고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IMF 때였습니다. 자사 주식을 사둔 게 폭락하면서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결국엔 이혼을 당했습니다. 아버지가 목포로 데려가서 치료해 놓으면 다시 술 마시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길바닥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지요. 고향을 떠올리면 비릿한 바다 내음과 유달산이 생각난다던 친구가 허망하게 죽었습니다.
소피아라는 동아리 후배가 있었습니다. 암으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30년 동안 가장 자주, 꾸준히 만났던 후배입니다. 제주, 부안, 원주 등 내가 사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와서 말벗이 되었던 후배였지요.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 광화문광장에서 그녀가 말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한동안 보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후배랑 연락이 끊겼습니다. 전화하고, 문자를 보내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지요. 그렇게 두어 달 동안 걱정할 때 아산중앙병원에 입원해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유방암에 걸린 소피아는 암세포가 전이된 팔만 뽀빠이처럼 부풀어 올랐을 뿐 아이처럼 몸이 작아져 있었습니다. 이제는 벗으로 여기는 소피아를 만나러 매년 시월 말에 경기도 연천의 성당을 찾아갑니다.
7월 말에 제주 친구의 임종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의 아들이 SNS에 게재한 글을 보고, 21일에 유명을 달리했다는 걸 알았습니다. 통영에서 아내와 휴가를 보내는 동안 그의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제주를 대표하는 요리사로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던 친구가 저승에서나마 아프지 않고,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최근에 알게 된 스님과 차를 마시면서 이런 얘기를 했더니 의미 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병원에 근무하는 거사가 자꾸 건강검진을 받으라고 해서 까닭을 물었더니 건강할 때 받는 게 건강검진이랍니다. 
건강할 때 검진을 받아서 제때 조치를 하면 크게 아프지 않고, 살 만큼 산다고요.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으면 큰 고통을 겪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습니다. 종합병원의 첫인상은 ‘많이 낡고, 후줄근하구나. 이래서 의사들이 지방병원에 안 오려고 하나?’였습니다. 의사들도 가운만 벗겨놓으면 시골 장터 사람들과 다를 바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진료가 시작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성의 없이 형식적으로 대하는 도시병원들과 달리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위내시경을 하는데 팔과 가슴에 심전도계를 붙이고, 손가락에 센서를 달았으며 코에는 산소호흡기를 꼽았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습니다. 또 상담을 통해서 “국가건강검진은 대략 65% 정도의 예후를 찾아낼 뿐이다. 많은 돈을 들여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사할 필요는 없겠지만 대장내시경이랑 복부초음파 정도는 받는 게 좋다” 그것만 추가해도 75%에서 80% 정도는 병의 예후를 찾아낼 수 있다는 설명도 들었습니다.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고, 신뢰감이 생겼습니다. 검진 뒤에는 헌혈했을 때처럼 빵과 베지밀도 챙겨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