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넌 뭐니?
1980년대 초중반만 해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유럽 영화를 보면 ‘저것들은 인간인가? 짐승인가?’ 하는 생각으로 혼란스러웠습니다. 베드신은 물론이고, 키스 신조차도 검열에 잘려나가던 한국 영화와는 달리 처음 만난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국사회의 풍경이 됐습니다.
올여름에 예전 드라마 장길산을 봤습니다. 덥기도 하고, 침침한 눈으로 작은 글씨를 읽기가 불편해서 TV 드라마를 선택했지요. 요즘의 드라마와 비교하면 완성도나 배역에서 아쉬운 부분들이 적지 않았으나 원작의 빼어남이 그것을 극복하게 했습니다.
묘옥과 장길산이 섶다리에서 지나치는 찰나에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몸을 섞은 묘옥이 장길산에게 부탁합니다. 자신의 왼쪽 가슴에 연비(延丕)를 남겨달라고 말입니다. 장길산은 먹물로 묘옥의 가슴에 吉 자를 새겨넣습니다. 그리고 묘옥은 이제 나는 당신의 여자라고 말합니다. 전혀 다른 시대인 걸 알면서도 매우 불편했습니다. 사람은 마소(馬牛)가 아니니까요. 장길산이 참형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자진하려던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수 에일리가 미국에 사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니까 부모님이 즉각 말했다지요. 1년만 먼저 살아보라고. 그래 결혼식을 올린 건 얼마 되지 않았으나 같이 산 건 꽤 됐다고 합니다.
여전히 순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벼이 여길 이유는 없으나 순결을 잃었다고 해서 죽거나 원치 않는 결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지 못하는 상태로 결혼해서 이혼하는 것보다는 일정 정도 살아보고, 잘 맞는다고 판단될 때 결혼식을 올리는 게 합리적이니까요.
수컷으로 태어난 게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발정 난 개처럼 이 여자, 저 여자를 전전하면서도 자신의 배우자는 순결하길 바라는 이를 볼 때 그렇습니다. 결혼한 다음에도 아내 외의 여자를 탐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사랑을 거절당했다고 해서 스토킹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심지어는 살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살인은 더 끔찍한 일입니다.
성범죄는 한 여자를 성적 쾌락의 대상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고, 가족과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 중대 범죄입니다. 그런 범죄자에게 심신미약이라며 솜방망이 처벌하는 법원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으로 태어난 아기가 성장하기까지 축적된 오랜 세월의 애정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이니까요.
술깨나 마셨어도 여자가 접대하는 술집에는 가본 적이 없습니다. 룸살롱은 물론이고, 가라오케 등의 유흥주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니라 주머니 속의 돈을 보고 웃는다면 그것도 일종의 성매매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 날 룸살롱에 데려갈 수 있을지, 없을지로 내기한 넋 나간 놈들도 있었다더군요.
나의 이상형은 백발이 됐어도 가을이면 낙엽을, 바닷가에선 조가비를 줍는 여인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내가 말했지요. 난 어릴 때도 그래 본 적이 없다고.
첫눈이 내리니 퇴근 뒤에 데이트하자고 했을 때 ‘난 눈이 싫다’면서 거절했습니다. 함께 놀고 싶어 하는 개과 남자랑 ‘싫어, 기다려’하는 고양이과 여자가 만나서 30년 넘게 삐거덕거리면서 살아갑니다.
‘부부의 사랑은 열정으로 시작해 현실을 지나 연대로 이어지는 감정이다. 그 열정이 사라졌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다’,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사랑을 소진해 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 드라마 에스콰이어 12회차에 나오는 사랑과 결혼의 정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