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언어로 세계와 소통…관광지 아닌 예술로 진화하는 섬 ‘신안’

② 예술의 섬 신안군 김환기의 예술혼에서 수상미술관까지 섬이 미술이 되는 시간, 세계와 소통

2025-10-27     김유성 기자
신안군 안좌도 저수지에 국내 최초 부유식 미술관인 플로팅뮤지엄이 내년 봄 완공될 예정이다.

 

김환기에서 시작되다

 김환기의 예술세계는 신안의 풍경과 정신을 압축한 상징이었다. 신안군은 이 정신을 지역문화의 근간으로 삼아 ‘섬 전체가 미술관이 되는’ 비전을 세웠다. 
김환기의 고향인 안좌도에는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택이 보존돼 있고, 인근 신촌저수지에는 국내 최초급 부유식 미술관인 플로팅뮤지엄이 내년 봄 완공 예정이다. 물 위에 떠 있는 7개의 큐브형 구조물로 설계된 이 미술관은 일본 작가 야나기 유키노리가 총괄디렉터로 참여해 김환기의 예술세계를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수면 위로 비치는 빛과 하늘, 계절의 변화가 전시의 일부가 되는 구조로, 물과 시간, 반사가 하나의 작품이 된다. 이 미술관은 신안군의 예술정책을 집약한 공간으로, 군은 이를 퍼플섬과 연계해 국제 작가 레지던시와 청년예술가 교류 프로그램을 병행할 계획이다. 
이러한 구상의 기반은 2010년대 후반부터 추진된 ‘1섬 1뮤지엄’ 프로젝트다. 압해도의 저녁노을미술관을 시작으로, 자은도의 1004뮤지엄파크, 비금도의 조개박물관, 도초도의 이세돌바둑박물관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각 섬마다 주제와 정체성이 다른 문화시설을 조성해 섬 전체를 예술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김환기 고택 사진

 

‘암태도 소작쟁이’ 예술로 확장

 최근 신안의 예술정책이 다시 주목받은 계기는 서용선 작가의 전시였다. 암태면 옛 농협 창고를 개조한 암태창고미술관(현 서용선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1923-1924 암태도 소작쟁의 100년》은 신안의 역사를 예술로 재해석한 시도로 평가받았다. 작가는 100년 전 농민들의 저항과 절규를 강렬한 붓질과 짙은 색채로 표현하며, 지역의 기억과 사회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이 전시는 신안의 예술정책의 출발점이라기보다, 역사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드러내며 ‘신안 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힌 사례로 남았다.
도초도의 수국정원 정상에는 세계적 설치미술가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숨결의 지구(Breathing Earth Sphere)》가 설치돼 있다. 화산석 타일로 구성된 구형 구조물이 바람, 빛, 안개에 따라 색을 달리하며 자연의 호흡을 시각화한다. 이 작품은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일깨우는 환경 예술로 평가되며, 신안의 섬이 세계적 예술의 흐름 속으로 들어섰음을 상징한다. 섬의 정상에 세계 작가의 작품이 들어서면서 신안의 섬들은 하나의 작품이자 미술관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농협 창고를 개조한 암태창고미술관

 

색을 통해 지역 정체성 정의

안좌면의 작은 섬 반월도와 박지도가 ‘보라색’으로 다시 태어났다. ‘퍼플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색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한 공간이다.
신안군은 도라지·라벤더·꿀풀 등 자생하는 보라빛 식물에서 착안해 마을 전체를 보라색으로 물들이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지붕, 다리, 가로등, 표지판까지 모두 보라색으로 통일하면서 ‘보라빛 경관’이 탄생했다.
특히 반월도와 박지도를 잇는 1km 길이의 ‘퍼플교’는 섬의 상징이 됐다. 퍼플섬의 성공은 색 하나가 지역 이미지를 바꾸고, 경제를 움직인 대표 사례로 꼽힌다. 보라색 옷을 입은 방문객에게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이벤트는 퍼플섬의 유쾌한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예술섬 전략으로 신안군의 2024년 4분기 기준 생활인구는 52만8,000명, 주민등록 인구의 약 14배에 달한다. 

 

색으로 지역 이미지를 바꾼 피플섬

 

섬 전체가 하나의 네트워크

 그러나 예술이 관광의 장식물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서는 운영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꾸준하다. 
신안군 관계자는 “신안의 예술정책 성공 여부가 건축보다 운영의 지속성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단기간의 개관 러시보다 주민 참여와 운영 구조의 정착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술을 통한 지역재생이 진정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예산 구조와 행정 시스템이 예술가 중심에서 주민 중심으로 이동해야 하며 섬마다 독립된 미술관이 아니라, 섬 전체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작동할 때 비로소 ‘섬이 미술이 되는 시간’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도초도의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

 

 김환기의 ‘푸른 점’이 자연과 우주, 인간을 연결한 회화였다면, 신안의 예술섬 정책은 섬과 예술, 그리고 주민을 연결하는 사회적 실험이다. 서용선의 전시는 그 실험이 지역의 기억과 예술의 현재를 잇는 교차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도초도의 설치미술은 신안이 세계 예술의 언어로 소통하기 시작했음을 증명했다. 

 

 

 

 

김유성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