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다움이 곧 예술이었다…통증 속에서도 예술은 이어지고

③제주도 가파도 화려한 껍데기 속에 남은 고요한 현실 상처 너머, 예술은 여전히 숨쉬고 있었다

2025-10-31     김유성 기자

 

예술의 섬을 지향하는 제주 서귀포시 가파도 곳곳에는 설치미술품이 전시돼 있다.

 

 제주의 남단, 서귀포시 대정읍 앞바다에 자리한 작은 섬 가파도는 봄이면 청보리밭이 바람에 물결치고, 낮은 돌담과 푸른 바다가 맞닿은 평탄한 지형 덕에 ‘가장 제주다운 섬’으로 불린다. 
그러나 최근의 가파도는 그 이름 뒤에 “상처”라는 단어가 따라붙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한 ‘예술섬 프로젝트’는 거대한 예산과 화려한 기획 속에 시작됐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섬은 정체성을 잃고 표류 중이기 때문이다.
가파도의 ‘예술섬 프로젝트’는 2013년 9월, 제주특별자치도와 현대카드가 손잡으면서 본격화됐다. 당시만 해도 가파도는 인구 200여명의 평범한 어촌이었다. 청보리밭과 돌담, 낮은 지붕의 초가가 이어지는 고요한 섬에 ‘예술’이라는 새로운 단어가 들어온 것이다.
제주도는 행정과 예산을 담당하고, 현대카드는 도시 재생과 공간 디자인, 예술기획을 맡았다. 단순한 관광 개발이 아니라 ̔자연과 예술의 공존, 지역과 예술가의 상생ʼ을 목표로 내세웠다. 이른바 ‘가파도 아름다운 섬 만들기 사업’, 즉 가파도 프로젝트였다.
총사업비는 148억원. 제주도는 섬 전체를 하나의 유기적 예술생태계로 재탄생시키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섬의 환경과 예술이 결합된 모델을 통해 관광지 중심의 피상적 개발이 아닌, 지속 가능한 섬의 미래를 제시하겠다는 의도였다. 이로인해 작은 섬에는 각종 건축물이 들어섰다.
 

화려한 포장 뒤의 상처

방치된 아티스트 레지던스

 

 외견상 가파도 프로젝트는 성공처럼 보였다.
폐가와 노후건물을 리모델링해 조성된 가파도 터미널, 가파도하우스, 스낵바, 레스토랑 등 현대적인 시설은 낙후했던 섬의 이미지를 단번에 바꿔 놓았다.
정비된 경관과 감각적인 건축미는 젊은 세대의 발길을 이끌었고, ‘청보리밭 위 인스타 명소’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20~30대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사업의 확장은 기대와 달랐다. 가파도 프로젝트의 주요 건축물 상당수가 법령 위반 상태였다. 자연취락지구 내 숙박시설, 자연환경보전지역 내 카페 및 판매시설은 관련법상 불가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허가·영업신고가 수리된 것으로 드러났다. 관할 서귀포시의 행정처리 또한 ‘부적정’ 판정을 받았다. 즉 영업을 할 수 없는 공간에 허가를 내줬고, 이 일로 모든 예술 프로젝트는 방향성을 잃었다. 
또 수익시설의 운영은 가파도마을협동조합이 맡았지만, 내부 갈등은 사업 초기부터 이어졌다.  마을 주민들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겠다는 본래 의도가 사라지는 등 조합의 운영·회계 투명성이 논란이 됐다. 
이어 난개발로 인한 미니멀의 미학도 뿌리채 흔들렸다.
가파도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하고 절제된 풍경이었다. 바다와 맞닿은 낮은 지붕, 돌담과 청보리, 그리고 여백의 미학. 그러나 지금 섬을 찾으면 그 풍경은 사라졌다. 입구에는 형형색색의 간판이 즐비하고, 숙박·식음시설이 무질서하게 늘어섰다. 섬의 미니멀한 정체성은 상업적 개발로 희미해졌고, 청보리밭 사이에는 차량용 도로와 구조물이 새로 생겼다.
‘최소의 것’으로 존재하던 섬이 ‘최대한의 볼거리’를 향해 나아가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역전됐다. 섬의 본래 색은 사라졌고, ‘예술’은 그 흔적만 남았다. 현재 운영 중인 예술공간은 대부분 비활성화 상태로, 프로젝트 기간 잠깐 운영될 뿐, 수십억원을 투자한 건물에는 냉기와 곰팡이 냄새가 먼저 방문객을 만난다.
 

그럼에도 예술은 이어졌다

어울리지 않는 현란한 간판들

 

그럼에도 가파도는 여전히 예술가들에게 매력적인 섬이다. 가파도 AiR(Artist in Residence)는 한바탕 내홍을 겪은 후인 2021년 이후 꾸준히 운영되는 프로그램이다. 제주문화예술재단이 주관하는 이 프로그램에는 매년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해 1~3개월간 섬에 머물며 창작활동을 펼친다.
2025년에는 7명의 입주작가가 ‘비가 땅에 닿기 싫은가 보다’라는 주제로 전시를 열었고, 2024년에는 해외 작가 6명, 국내 작가 3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섬의 해양쓰레기, 돌담, 바람, 파도소리 등을 작품 재료로 삼으며 ‘섬 자체가 캔버스’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2025년부터 시작된 ‘가파도 자연미술제’는 섬 전체를 전시장으로 삼았다. 밭, 올레길, 공터 곳곳에 설치미술이 펼쳐졌고, 유목(流木), 폐어구, 해양쓰레기 등이 작품의 재료로 활용됐다. 아이들이 직접 조형물 제작에 참여하는 프로그램, 플라스틱 프리 공연 등도 진행됐다.
현재 가파도에는 하루 약 700명, 연간 25만여 명의 방문객이 찾는다. 2018년 21만 명, 2019년 23만 명에서 꾸준히 증가했으나, 이후 코로나19와 사업 정체로 잠시 감소했다. 하지만 섬의 아름다움과 예술적 가능성은 여전히 방문객을 이끈다.
 

상처 너머, 여전히 남은 가능성

가파도는 여전히 많은 방문객이 찾는다.(가파도 선착장)

 

 기업과 지자체가 함께한 가파도 프로젝트는 ‘민관 협업’의 상징처럼 포장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지역 공동체의 균열과 행정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이 실패의 전부는 아니다.
섬의 본질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청보리밭과 바람, 바다와 돌담, 그리고 여백의 미학은 여전히 살아 있다. 예술가들은 가파도를 “자연이 곧 미술관이 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또 가파도는 여전히 아름답다. 하지만 진정한 아름다움은 ‘화려한 외관’이 아니라, 섬이 스스로의 색을 되찾는 과정에 있다. 예술가들은 가파도가 상처를 딛고, 다시 미니멀의 본질로 돌아갈 때, 가파도는 비로소 ‘예술이 섬이 되는 시간’을 되찾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유성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