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 의병항쟁 주인공 해남출신 ‘이남’

마산 맹진 원주이씨 집안 11월5일 학술강연회

2025-10-31     박영자 기자
마산출신 이남 장군은 조선 최초 의병을 모집해 달량진성에서 항전한 의병장이다.(남창 달량진성)

 

 명종 10년 8월23일, 예조에서 임금께 올리길 “이번 호남에서 전사자 및 피살자가 510여 명에 이르니 전사한 전 현감 이남(李楠) 등 6인을 1등급으로 하여 쌀과 콩 각 5섬, 종이 20권, 젯상 각 1건을 주고 다른 전사자나 피살자들은 합동으로 위령제를 지내어 원혼을 위로하게 하되 제문과 향폐 모두 내려보내소서 하니 임금께서 윤허하였다.” 명종실록의 기록이다.
이곳에서 등장하는 이남은 마산면 맹진출신으로 조선시대 최초 의병장이다. 명종 10년 음력 5월11일, 왜선 70척, 5,000~7,000여명의 왜구가 지금의 북평면 남창인 달량진을 침범했다. 
이는 조선 건국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왜구 침입이었고 왜구는 달량진에 이어 송지면 어란포 등을 초토화시키며 강진과 영암, 진도 등 전남의 여러 군현을 유린했다.
이때 이남(李楠, 1505~1555)은 광양 현감, 무장현감을 지낸 후 처가인 강진 금당리에 거처하고 있었다. 
그러한 그에게 달량진 사변이 전해졌고 그는 50세의 나이에 가솔(家率)과 향민 200여명을 모아 해남현감 변협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다. 
그는 달량진 전투에서 전사했지만 조선 건국 이래 최초로 민간인이 대규모 외적에 맞선 사례로 기록됐다. 
그는 나주에 들어서는 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 ‘최초 의병장’으로 소개된다. 
이남 장군이 높이 평가받은 이유는 그의 창의 정신이 임진왜란의 의병투쟁으로, 한말 마지막 호남 의병투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남 장군은 세조가 일으킨 계유정난 시 멸문지화를 피해 마산면 산막리로 입향한 강릉 대도호부사 이영화의 손자이다.
이남 장군으로 시작된 원주이씨 집안의 충절은 대대로 이어졌다. 그의 셋째 아들은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내다 육진에서 순절했고 조카 이준은 정유재란, 병자호란 참전, 같은 집안인 이계정은 임진왜란 때 원산도 앞바다에서 전사했다. 
또 이항, 이순, 이숙형, 이원해는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위했다. 현재 마산면 영산사에는 충청도 수군절도사로 임진왜란 때 전사한 이계정(1539~1595)을 비롯해 이숙형, 이황, 이대행, 이호, 이순, 이원해, 이준, 이성춘 등 9명의 충신이 배향돼 있다. 
한편 해남군은 오는 11월5일 ‘최초 의병장’ 이남(李楠) 장군의 행적을 되새기는 학술강연회를 연다. 
이번 학술강연회는 장군의 충절과 을묘왜변 당시 의병정신을 조명하고, 잊혀졌던 지역의 호국 역사를 새롭게 복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강연은 김덕진 광주교대 명예교수가 ‘을묘왜변과 이남장군’ 김만호 전남연구원 문화관광연구실장이 ‘임진왜란과 명량대첩’을 주제로 강의한다. 11월5일 오후 2시부터 해남군 문화예술회관 다목적실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