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명상

2025-10-31     김지영/(주)마고 대표, 공인회계사
                             김지영/(주)마고 대표, 공인회계사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다.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꺼내고 싶지 않은 날. 마음 안에 무언가 가득 차 있거나, 반대로 텅 비어 있는 것 같을 때. 그럴 땐 글 대신 몸으로 나를 느껴보려 한다. 나는 가끔 오감명상이라는 걸 한다. 특별한 건 아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 감각에 닿는 것들을 하나씩 인식해보는 것이다.
가장 먼저는 시각. 눈에 들어오는 모든 색과 빛, 형태들을 바라본다. 벽의 질감,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빛, 바닥에 떨어진 실오라기까지. 그 모든 것들이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나의 팔, 손등, 다리, 나의 몸이 이 장면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다음은 청각. 밖에서 나는 바람 소리, 멀리서 들리는 차량 소리, 냉장고의 진동, 전등의 미세한 웅웅거림. 풀벌레 소리, 새소리. 그리고 조금 더 집중하면 내 몸 안에서 들리는 소리도 있다. 위장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 심장이 뛰는 리듬, 코로 드나드는 숨소리. 외부의 소음에 가려 잘 들리지 않던 내 몸의 소리들이 조금씩 살아난다. 촉각은 늘 옆에 있지만 자주 놓치는 감각이다. 의자에 닿은 엉덩이의 감각, 다리 위에 얹힌 손의 무게, 바람이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 몸에 닿은 섬유의 포근함, 따뜻한 머그컵을 손에 쥐었을 때, 그 미세한 온기를 느낀다. 단단함과 부드러움, 차가움과 따뜻함이 손끝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건다.
미각은 단순히 음식의 맛을 보는 것을 넘어선다. 입안에 남은 음료의 여운, 침의 농도, 공기를 삼킬 때 느껴지는 입천장의 온도.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입안은 늘 살아 있다. 지금 나는 어떤 맛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후각은 때때로 가장 먼저, 때때로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다. 옷에 스며든 섬유유연제 냄새, 나무 냄새, 먼지 냄새, 혹은 아무 냄새도 없는 공기.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지닌 고유의 체취를 느끼게 된다. 나의 냄새. 나라는 존재가 공간 속에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이렇게 하나씩 감각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나의 몸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소리, 움직임, 온도, 리듬을 느끼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모든 것을 동시에 느끼는 시도를 하게 된다. 그러나 금방 알게 된다. 동시에 모든 감각을 느끼는 건 어렵다는 걸. 의식이 어느 한 곳에 머물러야만 인식이 되는데, 의식은 동시에 여러 감각에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식은 동시에 여러 감각을 느낄 수 없지만, 우리의 신경계는 의식하지 않아도 모든 감각을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북적이는 시장이나 사람 많은 장소에 다녀오면 괜히 정신이 사나워지고, 고즈넉한 산사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우리는 자주 잊는다. 내 몸이 얼마나 많은 감각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그래서 일부러라도, 그 평온한 감각 안에 나를 데려다줘야 한다. 꼭 집중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거기 있기만 해도, 우리 몸은 그 감각 안에 머물러 있으니까. 
그래서 모든 것을 느끼려는 그 시도는 종종 다음으로 이어진다. 그때부터는 하나씩 꺼져간다. 먼저 시각이 사라지고, 촉각, 미각, 후각도 흐려진다. 마지막까지 남는 건 청각이다. 소리의 흐름이 멈추면, 완전한 고요 속에 내가 남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나.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조금 비워지고, 그 비움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걸 느낀다. 그렇게 오늘도 나는, 말을 쓰지 않고도 나를 쓰고 있다. 감각으로, 침묵으로, 생생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