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소리, 적벽가로 다시 시작하다
백귀영 명창 소리판 14일 적벽가 발표회
30년 소리 길을 걸어온 백귀영(41) 명창이 송만갑 박봉술제 ‘적벽가 발표회’를 연다.
오는 11월14일 오후 4시 해남문화원 2층 공연장에서 열리는 이번 무대는 백 명창의 세 번째 소리판이다. 적벽가의 마지막 대목을 1시간 동안 선보이며, 북은 남편이자 고수인 박준호씨가 맡는다.
백귀영 명창이 소리를 처음 시작한 건 11살 때다. 소리를 하는 가족 친지가 아무도 없었지만, TV에서 우연히 본 가야금 병창에 불현듯 마음을 빼앗겼다.
백 명창은 “녹화 테이프를 돌려보며 무작정 따라 했다. 반년쯤 지나니 엄마가 선생님을 찾아줬고 배우기 시작해 지금까지 소리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부산예중과 남원국악고, 전남대 국악학과를 졸업했다. 그의 인생엔 오로지 소리뿐이었다. 하루 10시간씩 연습하며 ‘밥 먹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졸업 후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국악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했고 계속 가야 하나 수없이 고민했다.
고수인 남편을 만나 해남에 내려오게 됐고, 2012년 진도군립민속예술단 창악부 단원으로 입단하면서 삶은 안정됐다.
하지만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일상은 쉽지 않았다.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며 10년 가까이 공연만 이어갔다. 백 명창은 당시 공부나 성장이 멈춰 있었고, 주어진 무대만 소화하는 날들로 회상한다.
전환점은 2019년 찾아왔다. 진도군립민속예술단 감독으로 온 김경호 명창을 만나면서였다.
백 명창은 “김경호 감독님에게 적벽가를 배우며 소리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할 수 있다는 격려 한마디에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판소리 다섯 바탕 중 가장 어렵기로 꼽히는 적벽가는 남성적인 소리로 알려져 있다. 곡의 흐름이 까다로워 전수생들이 많지 않고, 전쟁 용어와 병법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적벽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백 명창에게 큰 모험이었지만, 다행히 그와 잘 맞는 소리였다.
김경호 명창과 남편 박준호 고수의 권유로 2021년 첫 번째 적벽가 발표회를 열어 적벽가 초반부를 1시간30분에 걸쳐 소리 했다.
백 명창은 “첫 발표회는 완전히 망쳤다. 개인 무대가 오랜만이었고 목도 쉬어버렸다. 그래도 발표회가 있어야 제 것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023년도에는 두 번째 발표회에서는 중반부를, 이번 세 번째 무대에서는 끝 대목을 선보인다. 4시간짜리 대곡을 세 해에 걸쳐 완성하는 셈이다.
그는 평일엔 예술단 연습, 매주 토요일엔 향토문화회관 상설공연, 퇴근 후엔 아이들과 집안일을 돌보며 연습 시간을 채운다.
남편 박준호씨는 그의 가장 든든한 동료이자 후원자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만나 국악으로 이어진 부부다. 국악의 길을 함께 걸어오며,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게 큰 힘이 됐다.
이번 발표회는 그에게 또 다른 시작이다. 적벽가의 완성, 그리고 앞으로 완창전과 대통령상을 목표로 더욱 나아갈 계획이다.
백 명창은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기력이 다할 때까지 소리를 하고 싶다. 방황은 충분히 했고 이제는 소리를 평탄하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