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시마, 버려진 섬에서 세계 예술의 중심이 되다

④ 일본 나오시마 예술로 되살아난 공동체의 기적 자연과 빈집 활용, 연간 70만명

2025-11-18     조아름 기자

 

나오시마 대표 조형물인 쿠사마 야요이의 ‘빨간 호박’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다카마쓰항에서 배를 타고 50분 남짓, 잔잔한 세토 내해를 건너면 커다란 ‘빨간 호박’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세계적인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조형물이다. 바다와 맞닿은 선착장에 놓인 호박은 나오시마의 상징이 됐다. 한때 산업 폐기물로 뒤덮였던 섬이, 예술의 섬으로 부활했음을 알리는 첫인사다.
불과 40년 전까지만 해도 나오시마는 버려진 섬이었다. 조선소와 제련소가 문을 닫자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하나둘 섬을 떠났다. 남은 것은 폐가와 녹슨 기계, 그리고 침묵뿐이었다. 
1987년, 교육기업 베네세홀딩스의 후쿠다케 소이치로 회장이 ‘나오시마 섬을 예술로 되살리자’는 제안을 내놓으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그는 단순히 미술관을 짓는 것이 아니라 ‘섬 전체를 예술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 꿈은 곧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만나 현실이 됐다.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은 땅속의 미술관으로 자연과 건축, 예술이 공존한다.

 

 안도 다다오는 나오시마의 산세와 바다를 거스르지 않는 방식으로 건축을 설계했다. 콘크리트 구조물임에도 거친 풍경 속에 스며드는 건물들, 자연광만으로 감상하는 작품 공간은 그가 말한 ‘빛과 그림자의 예술’을 보여준다. 
1992년 문을 연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호텔과 미술관이 결합된 독창적인 공간이다. 방문객은 ‘하룻밤 머무는 예술 체험’을 통해 작품 그 자체로 동화될 수 있다. 
이어 2004년에는 모네, 제임스 터렐, 월터 드 마리아의 작품을 지하 공간에 설치한 ‘지중미술관’이 완공됐다. ‘땅속의 미술관’이라는 뜻 그대로, 건물 대부분이 지하에 묻혀 있어 자연과 건축, 예술이 공존한다.
안도 다다오는 “건축은 공간을 짓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짓는 일”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말처럼 나오시마의 건축은 사람을 중심으로 한다. 예술을 통해 섬에 남은 사람들의 삶을 되살리고, 떠났던 사람들의 발길을 다시 이끌었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그 자체로 전시물이자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바다를 향해 서 있는 콘크리트 벽 사이로 빛이 스며들 때, 그 자체만으로 충분하다.

주민 돌아오는 섬, 나오시마

 

‘이에 프로젝트’는 마을 빈집들을 재생했다.

 

 이후 나오시마는 하나의 예술 생태계를 갖춘 섬으로 거듭났다. 마을 곳곳의 빈집을 활용한 ‘이에 프로젝트’ 나오시마 재생의 핵심이다. 버려졌던 가옥에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품을 만들고, 주민들은 전시 해설사이자 운영 주체로 참여했다. 덕분에 예술은 외부의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됐다. 
나오시마의 변신은 단순한 관광 개발이 아니라 공동체 회복의 과정이었다. 예술이 섬에 스며든 방식이 담겨 있다.
후쿠다케 회장은 “예술이 사람을, 사람이 다시 섬을 살린다”고 말하곤 했다. 
베네세 재단은 초기부터 주민 설명회를 반복하며 신뢰를 쌓았고 청소와 안내, 숙박 등 일자리의 대부분을 지역민에게 맡겼다. 예술가와 기업, 주민이 동등한 파트너로 움직이는 구조가 나오시마의 지속성을 만든 셈이다. 
30년에 걸친 재생사업을 통해 연간 70만명이 찾는 섬이 됐고, 주민 수도 10배 늘었다. 
현재 섬 인구는 400명에서 4,000명으로 늘었고, 젊은 예술가와 창작자들의 이주가 이어지고 있다. 나오시마 섬이 예술 공간으로 바뀌면서 지역 경제 규모가 20배 넘게 성장했다. 
마을과 학교에는 오랜만에 다시 웃음소리가 들리고, 폐가였던 집들은 게스트하우스나 공방으로 변신했다.

3년마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베네세 하우스 뮤지엄’은 호텔과 미술관이 결합된 독창적인 공간이다.

 

 나오시마의 성공은 세토우치 지역 전체로 확산됐다. 2010년 시작된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3년마다 열리는 트리엔날레로, 현재는 17개 섬이 함께 참여하는 대규모 예술 축제로 성장했다. 
주변의 테시마, 오기지마, 쇼도시마 등 세토 내해를 따라 자리한 섬들은 각각의 자연과 일상을 배경 삼아 예술 작품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2025년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는 총 3개 시즌 봄, 여름, 가을로 나뉘어 열렸다. 봄에는 4월18일~5월25일, 여름에는 8월1일~31일, 가을에는 10월3일~11월9일에 진행했으며 축제 기간은 총 107일이었다. 
올해 참가 지역은 총 17곳으로 확대됐고 신규 참여 지역도 늘었다. 
‘버려진 섬’이라는 이미지는 ‘예술의 섬’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예술이 지역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다.
나오시마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예술은 지역의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산업이 떠나고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예술이 남았을 때, 그것은 새로운 산업이자 공동체의 언어가 된다. 나오시마의 실험은 우리가 지역을 새로 보는 시선을 길러준다.
해남의 섬과 바다는 잔잔하다. 산과 바다가 맞닿은 땅끝의 풍경 속에서, 예술이 사람을 모으고 마을을 잇는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나오시마의 이야기는 지금, 그 질문을 해남에 던지고 있다.

 

 

 

조아름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