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재발견 ⑭삼산면 송정리 뒷산
2010-10-11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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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조급해질 때 넉넉함으로 감싸준다
선봉에 선 장수처럼 삼산벌을 향해 우람하게 버티고 선 송정리의 해송, 뒤로는 수많은 적송들이 장수의 명령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듯 진을 치고 늘어서 있다.
고정희 시인 생가가 있는 삼산면 송정리의 아담한 뒷산엔 수령 600여년 된 해송이 하늘이라도 가릴 듯한 기세로 가지를 펼치고 섰다.
해송은 매일 삼산벌을 바라본다. 어머니 젖줄 같은 삼산천이 칭얼대는 논으로 도란도란 물을 실어 나르면 흡족해진 벌판은 노란색으로 화답한다.
이곳은 고정희 시인의 무덤에서 출발한다. 시인의 무덤에서 잠깐 발을 멈추고 바로 잇닿은 저수지를 바라본다.
43세로 요절한 시인의 눈물이 모여 저수지를 이루었을까? 스산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저수지의 수면이 흔들린다.
적송 사이로 난 그늘을 따라 걷는다. 고개를 들면 미인의 속눈썹 같은 적송의 바늘잎이 가늘게 흔들린다. 마치 하늘에 그린 세필화 같다. 사계절 꽃이 끊이지 않고 피는 이곳은 겨울 동백을 시작으로 봄이면 벚꽃과 철쭉이 이어지고 지금은 빨간 꽃무릇(세칭 상사화)이 외로이 꽃대를 올리고 있다.
해남읍 구교리 김미옥씨는 무엇엔가 쫓겨 마음이 조급해질 때나 울적할 때, 혹은 그냥 삶에 안주하고 싶을 때 이곳을 찾는다. 자신보다 더 치열하게 살다 간 고정희 시인을 생각하며, 무덤에서 시작해 우람한 해송이 있는 잔디광장에 이르면 자신의 문제는 어느덧 티끌이 되어 있단다. 그리고 고정희 시인의 ‘상한 영혼을 위하여’를 읊조려본단다.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뿌리 깊으면야/밑둥 잘리어도 새 순은 돋거니/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후략>
박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