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에게

2010-10-19     해남우리신문
오늘 오후에 성현이가 학교를 찾아왔어요.
성현이는 아침이면 누구보다 일찍 나와 혼자 운동을 했고, 방과 후 집에 가면 저녁을 먹기 전에 항상 두 시간 정도 마을을 뛰던 아이였죠. 그리고 육상대회가 다가오면 대회 출전을 위해 먹고 싶은 것도 조절하며 체중 관리를 했지요. 그래서 해남군 학생육상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갔고, 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한 적 있었죠? 어떤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마음이 쓰인다구요. 그게 사실 성현이었어요. 수업 끝 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 되어서야 성현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교실에는 그런 아이들이 언제나 몇 명 쯤 있는데,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교실에 남아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 아이 목소리가 이렇게 컸나?’ 싶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언제나 가슴 한 곳이 휑해져요. 아이들에게 학교는 어쩌면 이런 침묵을 배우는 곳이 아닌가 싶어서요. 학교가 가르치는 많은 것 중에 이런 수동적인 것을 가르치기도 한다고 그대에게 푸념을 했죠. 그런 제게 그대는 “아이들이 조용히 있는 법도 배워야지. 에너지가 넘친다고 하고 싶은 것만 하면 그게 제대로 큰 거냐.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을 줄도 알고 분위기를 봐가면서 조용히 할 줄도 알고. 그대도 다 그렇게 크지 않았냐. 맥없이 그런 걸로 안쓰러워하지 마라.” 라며 대수롭지 않게 저를 토닥여줬죠.
성현이는 올해 예정대로 광주로 고등학교를 들어갔고 입학한 3월에 한 번, 그리고 오늘 학교를 찾아온 거였어요. 말라보였지만 거무스름하게 탄 낯빛 덕분인지 더욱 건강해 보였습니다. 성현이가 교무실로 성큼성큼 들어오는데 몇 개월 전 까지만도 중학생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어요. 대신 여름 내내 수돗물처럼 쏟아지는 땀은 참아도 얼굴 그을리는 것 때문에 힘들었다는 성현이의 투정이 외모에 관심 많은 고등학교 1학년 학생 맞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어요.
성현이가 학교에 잘 다니고 있냐구요? 안 그래도 지난주에 있었던 전국체전에 3일의 휴가를 받아서 이렇게 우수영에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연하다는 듯이 출전 성적을 물었죠. 성현이는 다시 한 번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주 종목인 중거리 예선에 출전 했다구요. 예선서 뛴 것이 전부이고 본선에는 출전하지 못 했대요. 우울한 표정이었냐구요? 웃는 얼굴이 저를 향하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이번 동계훈련 때는 운동량을 높여 몸을 만들겠다고 하네요. 스승이라고 저를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가는 성현이가 오늘도 저를 깨어있으라 합니다.  
그대, 저는 큰 목소리로 떠들며 삼삼오오 걸어가는 아이들을 따라 잠깐 걷다가 건물 2층에 있는 도서실로 올라왔습니다. 아이들은 어쩌면 항상 저보다 앞 서 있는 것도 같습니다. 더 씩씩하게 걷는 법을 알고 운동장에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공을 차며 스트레스를 푸는 법도 알고, 자기 자신의 생각에 귀 기울이고 생각을 분명히 하고 그 것을 실천할 만큼 용기 있고 어떤 것이 진짜 부끄러운 것인지도 알아요.  
그대,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 생각을 합니다. 그대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내 딸 은지야, 더 씩씩하게 걸어라. 엄마가 마음으로 토닥여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