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고산 청소년 백일장 장원 - 몸

2010-10-26     해남우리신문
몸은 말을 한다. 오늘도 내 아버지의 몸은 무언가 내게 말을 한다. 그의 몸짓을 보고 나 또한 화답을 한다. 수화, 청각 장애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나의 아버지는 어릴 적 병을 앓고 장애를 갖게 된 후천적인 청각장애인이다. 나는 아버지로 인해 자연스레 말과 수화를 함께 배웠다. 어머니께서 책 읽어주시는 소리를 들으며, 아버지께 내가 듣고 있는 책에 대해 열심히 수화를 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면서 쫑알쫑알 아버지께 재롱을 떠는 어린 날 우리 집의 모습이었다. 어릴 적 나는 누구나 몸으로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도 수화를 했고 아버지는 물론이고 우리 할머니도 아버지께 대화를 걸어오시는 모습을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만 아버지가 말하는 것 보다 몸짓으로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뉴스를 볼 때에도 아버지는 늘 말하는 사람 대신 조그만 동그라미 속의 몸짓하는 사람을 빤히 보고 있었으니까. 내가 한 뼘 더 자라고 우리 집 문밖에서 내가 다른 이에게 하는 몸짓에 모두들 나를 좀 이상한 눈으로 바라볼 뿐 말을 했을 때처럼 반갑게 대답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이를 물으면 내밀어 보이던 내 손가락이 하나씩 더 늘어가면서 나는 아버지의 이상한 점, 아버지가 못하는 것을 알아갔다. 아버지는 얼굴 표정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눈에 띄게 다양했다. 마치 분장을 하고 텔레비전에 나와 과도한 표정을 짓는 피에로와 닮아보였다. 어릴 적 재밌어서 이유 없이 깔깔거렸던 그 표정들이, 내가 자라니 퍽 이상해보였다. 집에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면 내가 울고불고 벨을 누르고, 소리를 질러도 아빠는 문을 열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날, 나는 어머니의 품에서 넘어갈 듯한 숨을 꺽꺽거리며 들었다. 어머니는 날 가만히 다독거리며 말했다. 아버지가 보는 곳에서 몸짓으로 말하지 않으면 아버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고 말이다. 아버지와 우리의 차이점을 어머니에게 처음 들었던 날에 난 어렴풋이 알 것 같은 마음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나의 나이가 열 손가락으로 꼽히지 못하는 때에 다다르고 나는 집밖의 아버지에 대해 창피를 느꼈다. 친구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를 말하지 않았다. 행여나 새롭게 만나는 누군가가 나의 아버지를 아는 내 곁의 이웃일까 봐 혼자 덜컥 겁이 났다. 그런 나를 아버지 또한 알아채고 계셨으리라. 아예 아버지를 모르는 척 한 적도 있었다. 내게 걸어오는 아버지의 수화를 무시한 채 비껴 걸으며 얼른 사람들의 많은 시장 안으로 숨어들었다. 나의 등 뒤에서 아버지는 사람들의 무수한 시선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우뚝 멈춰있을 터였다. 나는 그날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무작정 장터를 빠져나와 걷고 또 걸었다. 아버지에 대해 떳떳하지 못한 내 자신이 싫었다. 그런 스스로가 밉고, 그런 장애가 있는 아버지도 원망스럽고 미웠다. 그동안 혼자 끙끙거리고 답답해했던 묵은 감정들이 이리저리 튀어나와 내 마음을 온통 엉망으로 만들었다.
걷다가 들어선 공원에서 큰 소리로 정신없이 울었다.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가장 서러웠던 것 같다. 마냥 어릴 적의 내가 아니었다. 커나가고 있는 사춘기에 아버지의 장애는 내가 소리 내어 아이처럼 울어도 되는 이유라도 되는 것 마냥 서럽게 울었다. 벤치에 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 생각했다. 가출의 개념도 아니었다. 난 그저 집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 볼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멈춰있는 내 앞에 아버지가 오셨다. 아무런 말없이 내 학교 가방을 드시고 앞장 서 걸으셨다. 아버지는 침묵이었다. 서로 그 어떤 몸짓도 오가지 않은 채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었다. 아버지의 뒤에서 거리를 두고 비척비척 걷던 나는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은 나를 찾아 거리를 헤매었을 모습을 그려보았다. 내 이름을 아버지의 언어로 내뱉었을까. 제대로 소리조차 치지 못한 채 뛰고 또 뛰며 비명도 고함도 아닌 이상한 소리를 질렀을까.
가만히 멈춰서 앞서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멈춘 기척조차 느끼지 못한 채 여전히 걸어가고 계셨다. 내가 소리 내어 울고 있는 것도 모르는 채 그저 침묵으로 걷고 계셨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때의 장면을 잊지 못한다. 가로새겨 가슴 언저리에 박힌 그 날의 다짐을 말이다. 평생에 오늘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나는 말하지 않는 아버지의 몸을 뒤에서 가만히 안았다. 드디어 입을 연 아버지의 몸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난 세상의 무수한 시선 속에 아버지의 몸을, 그 뜨거운 몸짓의 언어를 지켜주겠노라고 다짐했다.


이경화(진주여자고등학교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