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 선생님, 저 땅끝에 왔습니다
2010-11-02 해남우리신문
20여년 전 ‘계산시루(溪山詩樓)’에 저를 꿇어앉히시고 한시(漢詩)를 일러주시던 그 송지로 제가 아이들을 가르치러 왔습니다.
선생님을 떠올리면 늘 학(鶴)이 연상됩니다. 흐트러짐 없는 몸가짐과 흐트러짐 없는 마음으로 후학들의 앞길을 묵묵히 닦아주시던 고고한 분, 그래서 늘 선생님은 제게 한 마리 학(鶴)이 되어 날아오십니다.
“국어 선생이 애기들한테 한시(漢詩) 한 편도 못 갈치믄 쓰것소?”
채찍보다 날카로운 말씀으로 압운법, 평측법을 강하시던 모습이 어제 같습니다.
시조(時調)에 대한 열정 또한 오죽하셨습니까? 작은 재주 크게 자랑하시어 이태극 박사님 댁까지 제 손 잡고 가 기어이 시조의 길 열어주신 선생님 아니십니까.
또 시조를 공부하겠다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손을 내밀어 다독이시고 가르치시던 큰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오늘 송지에서 후학을 가르칩니다.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면 부족함이 너무 많아 부끄럽습니다.
책 덮는 녀석들 다독여 배움의 길을 열어야 하거늘, 길을 트는 녀석들 손잡아 바로 세워야 하거늘, 제 능력의 작음은 보지 않고, 아이들의 그릇됨만 원망하고 있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하여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이들에게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되어보자고.
“칠순 되믄 그저 쓸 만한 놈 몇 개 모아서 책 한 권 묶을라요. 그간 글빚 진 분들한테 빚갚음이나 할 수 있으믄 그만이지라우.”
시집(詩集) 언제 내시냐면 한결같던 선생님의 말씀이셨습니다.
같은 시대 우리 문단에는 ‘책 공해’라 할 만큼 시집들이 쏟아지는 때여서, 그리고 동료 작가들에게 억지로 시집 몇 권씩 떠맡기는 시절이어서 선생님의 말씀은 늘 거울이 되어 절 되돌아보게 합니다.
작은 재주 크게 떠벌리는 세상에서 선생님은 큰 뜻을 애써 겸손 속에 감추셨기 때문입니다.
손톱만한 이익을 위해 체면까지 팽개치는 세상에서도 선비정신을 잃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입버릇 같던 그 말씀이 칠순 잔칫날 책 한 권으로 묶여 출판 기념회를 겸했을 때. 외람되게 ‘작가의 삶‘을 회상하다가 울컥 울음을 쏟았던가요?
그땐 이미 선생님은 죽음의 골짜기 깊숙이 걷고 계셨었지요. 의자 깊숙이 작아진 몸 묻으시고 야윈 볼에 눈물 담던 모습이 지금도 학처럼 고고하게 떠오르는 것은 올곧은 선비로 살아오신 선생님의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후학은, 선생님의 그 결고운 삶을 이어가길 원합니다. 아이들 앞에 학처럼 서 있고 싶습니다.
행여 길을 틀거든 생전처럼 낮고 힘찬 목소리로 길안내 해주십시오.
출근하는 길, 달마산자락을 감아 도는 물안개가 솜이불처럼 포근해 보입니다.
생전 선생님의 모습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