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에도 무대에 선다

2010-11-16     해남우리신문
우수영 포구문화제 때 열창 관중환호


허리도 잘 펴지지 않고 거동도 자유롭지 못한 90세 할아버지가 무대에 섰다. 흥부가 중 흥부가 눈을 뜨는 장면을 부를 때 관중석이 떠들썩하다. 발음은 정확하지 않지만 온 몸에 소리를 실어 열창하는 모습에 관중은 환호한다.
박신한(89․문내면 삼덕리)할아버지가 지난 6일 우수영 거리에서 열린 포구문화제 무대에 섰다. 이날 관중들의 뜨거운 반응에 한껏 상기된 박 할아버지는 평생 들녘에서 농부가를 불렀던 소리꾼이다. 알려지지 않은 농부 소리꾼, 그러나 어찌나 목소리가 구성지고 구슬픈지 어릴 때부터 동네 모찌기와 모내기, 김매기에는 여지없이 불려나갔다.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농부들을 울리고 웃긴 그는 당시 들녘 소리꾼으로 통했다. 그의 애간장 녹이는 소리에 농부들은 설움에 목메었고, 신명이 오르면 몸짓과 후렴으로 힘든 농사철을 이겨냈다.
박 할아버지는 농부가는 흥겨운 가락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네 한이 서려있다고 말한다. 그 한을 살려내는 소리꾼이야말로 진짜소리꾼이라고 말하는 박 할아버지. 그래서일까 박 할아버지가 들녘에서 소리를 하면 지나가던 객들도 발길을 멈추고 경청했다. 그리고 동네 머슴들은 매일이다시피 이른 아침에 날계란을 들고 와 할아버지를 들녘으로 데리고 나갔다.
김매기가 끝나고 가을이 되면 할아버지는 산에서 소리를 했다. 산에 나무하러 간다고 하지만 정작 소리를 위해 산에 올랐다.
젊음을 들녘소리꾼으로 보냈던 할아버지, 농기계가 들어오면서 그의 소리는 노인정으로 옮겨졌다. 지금도 마을노인정은 할아버지가 나와야 신명이 난단다. 마을마다 북을 잡은 고수들은 있지만 창자가 없어 할아버지는 노인정에서 인기가 최고란다.
할아버지는 스승 밑에서 정식으로 소리를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다. 그러나 해남노인종합복지관에서 주관한 노래자랑 등 여러 대회에서 상을 받은 것으로 위안을 삼는단다.
90이 다 된 나이는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박 할아버지는 당시 들녘에서 농부가를 불렀던 이들은 모두 떠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90이 된 나이에도 소리가 있어 즐겁다는 할아버지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무대에는 반드시 서겠단다.
박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