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생김 속에 평등과 상생 담긴 불교 조형물들

2011-01-04     해남우리신문
대흥사 대웅보전 대들보, 미황사 동물문양
황산 연당, 계곡 성진 미륵 모두 못생겨


사람은 반듯하고 단정함, 잘생긴 모습을 참 좋아합니다. 그러나 못생김이 이를 받쳐주지 않는다면 잘생김의 가치는 없는 것이지요. 못생김에 대한 변명 좀 할까요.
천년고찰 대흥사와 미황사에 가면 못생김의 미학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비록 못생겼지만 못생김에서 오는 다정함과 해학, 평등사상을 일깨워주기에 감동으로 보는 작품들입니다.
이들 작품들을 논하기 전에 못생김의 대명사,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을 논해볼까요.    
주인공 슈렉과 피오나 공주는 너무도 못생기다 못해 괴상스럽게 생겼습니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못생김의 미학을 찬양하는데 물러섬이 없습니다. 동화 속 주인공은 언제나 잘생긴 왕자와 예쁜 공주인데 애니메이션 슈렉은 그렇지 못합니다. 사회의 비주류였을 못생긴 이들이 주인공이기에 그랬을까요. 이 영화는 사랑을 듬뿍 받으며 흥행에 성공합니다.  
못생긴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유명한 글귀가 있습니다.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는 가장 먼저 잘려져 목재로 쓰이고 가장 못생긴 나무는 끝까지 남아 조상이 묻힌 선산을 지킨다는 것입니다. 또 사막을 건너는 것은 용맹한 사자가 아니라 못생긴 낙타이고, 부모를 오래도록 모시는 자식도 잘나지 못한 자식이라고들 합니다.
못생김, 못생김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자리를 지키며 빛을 발하는 대흥사와 미황사 불교조형물들을 들여다볼까요.
못생겼기에 지나칠 수 있는 조형물이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가치와 철학이 숨 쉬고 있기에 경건하기까지 한 작품들입니다.
대흥사 대웅보전은 우리나라 불상 중 가장 잘생긴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토록 경건한 부처님이 계신 공간인데 안의 기둥과 대들보는 모두 휘어져 있습니다. 반듯한 것이 하나도 없는 대웅보전 안, 그야말로 휘어짐의 공간입니다. 너무도 완벽한 부처의 모습과 휘어진 기둥과의 조화, 잘생기고 못생김의 만남, 상생을 향한 아름다움일까요.    
우리의 한옥건축에는 평등사상이 깃들어있습니다. 못생김을 버리지 않습니다. 잘난 놈은 잘난 대로 못난 놈은 못난 대로 쓰임새가 다 있음을 보여줍니다.    
대웅보전 앞에 있는 수호신도 못생김의 대명사입니다. 가장 잘 생긴 부처를 수호하는 수호신치고는 너무 못생겼습니다. 어찌나 못생겼던지 전설도 전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정말로 못생긴 일본인 장인이 있었습니다. 대흥사 주지는 근엄한 수호신을 제작해 줄 것을 주문합니다. 그러나 완성된 후의 작품이란 그야말로 흉물스러운 너무도 못생긴 수호신이었습니다. 평생 못생김을 한탄하며 살았던 장인이 세상을 향한 도전인 듯 자신의 얼굴을 조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는 자신을 수호할 수호신으로 그를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세계에선 모두가 같은 중생이라는 부처의 자비정신입니다.    
대흥사 입구 장승도 못생겼습니다. 헤 벌어진 입, 듬성듬성한 이빨, 왕방울 눈, 촌스럽지만 해학미가 넘치는 장승은 우리네 민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 못생김으로 사찰을 찾는 중생들을 맞이합니다. 나를 닮았기에 중생들은 스스럼없이 부처의 세계를 넘나듭니다.
미황사 부도전은 못생긴 동물들의 왕국입니다. 잘난 놈은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배를 볼록하게 내밀고 방아를 찧는 토끼, 달나라 토끼라고는 상상하기 힘드네요. 왕방울 눈에 돼지코 용, 용맹하고 신성한 존재인 용도 너무도 우습게 표현했습니다. 다리를 펴지 못한 사슴이며 외다리 오리 등 온전하고 잘생긴 동물들은 없습니다. 비록 못생겼고 온전치 못하더라도 다 소중한 존재이며 존엄한 생명체임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이겠지요.
거리에서 흔히 보는 미륵들도 그리다 만 것처럼 표현미가 떨어집니다. 황산 연당 미륵은 귀 한쪽이 떨어져 나갔고 읍 호천리 미륵은 반으로 쪼개져 버렸습니다. 계곡 성진 미륵도 숱한 세월동안 희미한 형체만 남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잘 것 없는 모습임에도 길거리 미륵들은 천년의 세월동안 중생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왔습니다. 길거리 미륵은 민초들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재난을 당했을 때 길거리에 세웠습니다.
따라서 해남에 있는 길거리 미륵들은 고려 말 왜군이 서해안을 자주 침범했을 때 세워집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보잘 것 없고 못생긴 모습으로 새겼지만 새긴 순간 그 바위는 미륵이요, 부처가 됩니다.
그러나 나를 닮은 촌스러움에서 민초들은 스스럼없이 미륵에게 찾아가 절망을 이야기 하고 그리고 살아갈 힘의 근원을 얻습니다.  
재주 많은 사람보다는 못생겼지만 평범한 사람이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다고 했습니다. 못생김의 미학은 모든 사물이 존재의 가치가 있음을 이야기하는지 모릅니다. 그 속에는 평등이 있고 존엄성이 있습니다.
휘어지고 굽어지고 생체기가 난 모습은 고단한 환경을 이겨낸 상징입니다. 우리는 곳곳에 있는 못생긴 상징물에서 나의 모습을, 결코 굴하지 않고 꿋꿋이 세상을 이겨내는 민초들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