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의 재발견 - 은적사 - 20
2011-01-04 해남우리신문
|
비자나무엔 할머니 숨결이 그대로
발자취마저 찾을 수 없도록 꼭꼭 숨어 있어 은적사라 이름했을까? 몇 차례 한파가 다녀간 은적사는 푸른 비자나무숲에 가려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은적사를 품에 안은 금강산은 간간이 바람소리만 울린다. 약사전 앞마당의 헐벗은 백일홍나무가 푸른 비자와 대조를 이뤄 추워보인다. 비로전의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새카만 철불의 온화한 미소가 무섭다.
비로전 토방에 서서 둘러싼 산을 바라본다. 이파리들 다 떨구고 선 참나무의 메마른 줄기가 먼 눈에는 강아지털처럼 보드랍게 보인다.
비로전를 내려오니 대나무 홈통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간간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경소리처럼 청아하다. 마음의 온갖 찌든 때도 모두 벗겨낼 것만 같은 고요한 울림이다.
해남읍에서 윤문희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윤문희씨는 이곳에 오면 할머니 품에 안긴 듯 마음이 편안해 진단다. 은적사 입구에 아름드리로 자란 비자나무들을 볼 때면 마치 할머니가 반기는 듯한 착각에 빠진단다. 절 아래 장촌리가 고향인 윤 씨는 어린 시절 할머니 손을 잡고 은적사를 자주 찾았고, 할머니는 구충제로 쓰이기도 했던 비자를 주워와 손자들에게 먹이기도 했다. 그건 할머니만의 사랑법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마음 심란할 때 비자나무 아래 서면 할머니의 손이 등을 토닥여주는 것만 같단다. 봄이면 바위틈에 핏빛으로 멍울져 핀 진달래, 여름의 활기찬 푸른 산, 가을의 수수한 참나무의 단풍, 겨울의 눈 쌓인 고즈넉한 은적사를 화폭에 담고 싶기도 하지만 마음에 느낀 것 그대로 전할 수 없어 붓을 들지 못한단다. 그저 마음의 화폭에만 셀 수 없이 그렸을 뿐이란다. 속세를 떠나고 싶을 때 자신의 자취마저 감추고 싶을 때 은적사는 말없이 그를 받아준다. 박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