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선생과 사의재(四宜齋)
2011-02-08 해남우리신문
정약용 선생의 호는 다산(茶山)으로 조선 순조 때의 실학자이며 저술가이다. 벼슬은 승지에 이르렀는데 천주교를 믿었다는 연유로 신유사옥에 연루 돼 1813년 전남 강진군으로 귀양 와 읍내 동쪽 조그마한 주막집에 사의재(四宜齊)라는 당호를 걸고 1801년부터 1804년까지 4년간 기거한다. 사의재(四宜齊)란 뜻은 첫째 思(생각 사)-생각을 맑게 하고, 둘째 貌(모양 모)-용모를 단정하게 하고, 셋째 言(말씀 언)-언어는 과묵하게 하고, 넷째 行(행할 행)-행동은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이다. 다산 선생은 1805년부터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옆에 초당을 짓고 19년간 실학자로서 천문, 지리, 역사, 의복, 사회, 정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실학을 집대성 한다. 그는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해 우리나라에 진보적 학풍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