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했던 우리 아부지

2011-02-22     해남우리신문
우리 아부지는 옆 동네 작은 아파트에 홀로 계신다. 좀 더 기력 있으실 땐 시골에 텃밭 일궈놓으면 너희들 푸성귀 걱정 안하고 얼마나 좋냐고, 그리 땅타령을 하시더니 언제부터인가는 그런 말씀을 안 하셨다.
자식인 우리는 우리가 들여다보기 편하다는 이유로 당신이 원하신 여생을 무참히 들어주지  않았다. 그건 다 우리 욕심 때문이었다.
기력도 쇠잔해 새장에 갇힌 새처럼 우리 아부진 그렇게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셨다. 여름이면 은행에 가서 더위를 피하시고, 겨울이면 우체국 앞 양지바른 곳에서 햇빛바라기를 하는 우리 아부지를 볼 때마다 젊은 나는 화를 냈다.
초라해보이게 왜 그런데서 노시냐고, 복지관에 가셔서 글씨도 좀 쓰시고 장기도 좀 두고 하면 좋을 텐데, 늙어빠진 장닭같이 조르르 앉아계시는지 젊은 나는 그렇게 볼 때마다 화를 냈다.
어쩔 땐 우리 아부지가 그렇게 시간 보내는 모습이 싫어 그 근처를 일부러 안보고 갈 때도 있었다. 젊은 내가 부리는 객기였다. 더 나이든 내가 오늘은 문득 그렇게라도 나가 햇빛바라기하는 아부지가 감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파에 치여 당최 바깥나들이를 못하고 안에서 홀로 생활하는 아부지를 오랜만에 찾아뵈니 그 모습이 그나마 건강할 때 누리는 호사였다는 걸 아주 작아진 아부지 등판을 보고 깨달았다. 바깥나들이를 하고 싶으셨던지 나를 보자 반기신다. 주변에 장이 서 일부러 나오는 내게 귤 한 상자 사주겠다고 털고 따라 나서신다.
이젠 나도 이해 못할 게 없는 나이인가보다. 전에는 싫었던 모습들이 이젠 초라함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 봐진다. 차에다 억지로 귤상자 올려주고 우리 딸이라고 과일집주인에게 안해도 되는 인사말을 건네는 우리 아부지…. 그리곤 내가 싫어했던 그 모습으로 들어가신다. 우체국 앞에 비맞은 장닭들의 햇빛바라기속으로…. 그 모습이 이젠 평화로움이다. 당신이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