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우수영서 외아들로 자라
2010-02-28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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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산골, 주인없는 화전민의 오두막을 빌려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청빈의 도와 무소유의 삶을 실현했던 법정(法頂)스님이 해남 문내면 선두리 출신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시대의 가장 순수한 정신의 소유자이자 숱한 저서를 통해 무소유의 철학을 알려왔던 법정 스님은 1932년 우수영 선창가인 선두리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외아들로 자란 법정스님은 너무도 가난한 어릴 시절을 보냈다. 작은아버지의 도움을 받아 중고등학교를 다닌 법정은 우수영초등학교 27회 졸업생이다.
목포로 중학교를 진학한 후 목포상고를 졸업했고 1954년 당대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 스님의 제자로 출가한다.
법정스님의 학생시절에 대해 임태중(74·문내 우수영)씨는 많은 기억을 하고 있었다. 임씨는 당시 법정스님의 작은아버지가 운영하던 선두리 여객선 매표소에서 근무한 관계로 법정스님의 어릴 적 일을 소상히 알고 있었다.
임씨가 기억하는 법정스님은 머리가 정말로 총명했고 책을 너무도 좋아해 한마디로 책벌레로 통했다고 한다.
방학이나 명절 때 매표소 일이 밀리면 그리도 좋아하던 책읽기를 뒤로 미루고 매표 일을 도와주곤 했다는 법정스님, 항상 남을 먼저 배려하고 매사에 정확한 것을 좋아했다는 법정 스님에 대한 그의 기억은 안타까움이다. 학비를 타기 위해 작은아버지를 찾아올 때마다 울고 갔던 학창시설의 법정 스님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는 것이다. 너무 안쓰러워 작은 아버지 몰래 금고에 손을 대 돈을 쥐어주고 나중에 결산할 때 실컷 야단맞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법정을 키웠던 작은 아버지는 이후 법정스님과 법정 어머니가 살 집을 목포 대성동에 마련해 줬다고 한다. 초가집이었던 이곳에서 법정스님 어머니는 하숙을 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고 임씨는 회고했다.
20여 전 법정스님이 해인사에 머무를 때 내종 간이었던 동생 한명이 그곳을 찾아갔다고 한다. 이때 법정스님은 임태중씨를 기억하며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임씨는 전했다.
현재 법정 스님이 자랐던 집 터는 남의 소유가 돼 옛 모습은 찾을 길이 없다. 불교계에서 가장 대중적인 필자인 법정 스님은 현재 병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 스님은 길상사를 창건했고 현재 제주도 서귀포의 한 신자 집에 머물며,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 스님은 와병 중에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와 「일기일회」「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등의 책을 잇따라 출간했다.
또한 법정스님은 지난해 2월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과 종교를 뛰어넘어 절친한 교분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우리 모두 부자가 될 수는 없기에 서로 가난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말했던 법정 스님, 하나의 씨앗이 기다림 끝에 열매를 맺듯 우리들도 매사 기다리고 뜸을 들이면서, 넘치기 보다는 다소 부족한 듯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던 법정스님의 집을 복원하자는 안이 제기되고 있다. 박영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