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에서 배운다

2011-03-15     해남우리신문

삐약삐약. 달걀을 넣어둔 부화기에서 소리가 들린다. 이상하다. 아직 알은 하나도 깨지지 않았는데 어디서 나는 소리지. 어머나. 자세히 보니 동그란 알이 꿈틀거린다.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나 여기 살아있어!”라고 선언이라도 하는 듯한 삐약! 그 생명의 징조에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우리 암탉들은 알은 낳지만 품을 줄 모르는 서글픈 어미들이다. 태어나서 품어진 기억이 없는 닭들은 다 자라 자기 알을 낳고도 품을 줄 모르는가 보다. 그 어미 역할을 대행하기로 마음먹고 어미의 체온과 습도를 유지해주고 온도가 고르도록 종종 뒤집어주기를 스무하루 밤낮으로 지속했더니 들려온 소리가 바로 저 ‘삐약’이다.
소리가 난 후, 첫째의 탄생을 보기위해 새벽까지 기다리다 고꾸라져 잠이 들었다. 첫째는 다음날 낮이 되어서야 얼굴을 보여준다. 부리로 알을 콕 찍고 나서 열 두 시간이 지난 후이다. 그동안 알을 깨기 위해 얼마나 힘겨웠는지 나오자마자 고꾸라진다. 부화기 안의 생명이지만, 그 생명의 신비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렇게 힘겹게, 노른자 먹던 힘까지 다 해 태어나 움직이는 녀석들을 보며, 어릴 적에 좋아하던 소설 ‘데미안(헤르만헤세)’의 구절을 떠올렸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 세계를 깨고 나온 녀석들. 대견하고 한편 존경스런 마음도 인다. 태어나는 존재들은 저렇게 온 힘을 다하는 구나. 본성을 잃은 어미닭의 서글픔에도 생명의 신비를 발하는 그 탄생을 보면서, 생명이 있다면 어떻게든 본래자리를 찾아갈 거라는 믿음이 생겨난다. 저 아이들은 나중에 자기가 낳은 알을 품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지. 엄마 대행 제대로 해주어야지. 이런 결심이 생겨난다. 자연에서 태어난 닭들은 알을 낳으면 스스로 품어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주고 수시로 알을 굴려서 골고루 따뜻하도록 해준다. 심지어 알을 잘 못 깨는 아이들이 있으면 부리로 쪼아가며 알 깨는 걸 도와준다고 한다. 그들은 자연스레 알고 있다. 우리 병아리들에게도 잃어버린 그 본능을 깨닫도록 도와주어야지.
우리는 어떨까. 지금은 실내온도조절기에, 기상청 일기예보에, 자동차에 자신의 감각들을 맡기고 사는 인간에게도 애당초 자연을 읽는 능력이 없지는 않았겠지. 현대인들은 많은 걸 잃어 가고 있는 게 아닐까. 편리함을 추구하며 사용한다는 에어컨, 보일러로 인해 자연의 온도를 예상하고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잃고 건설사와 전문가가 지어놓은 아파트에 살아가면서 집 짓는 본능을 잃고 정해진 제도에 맞추어 사느라고 스스로 삶을 만들어가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내 똥이 ‘똥’이 아닌 ‘거름’이 되는 삶을 살겠다고 귀농한지 1년. 해남 깊숙한 곳에서 살아가면서 자연으로부터 많을 걸 배우고 있다. 어쩐지 잃어버린 본성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현대 도시문명의 달달한 맛을 흠뻑 먹고 태어난 아이. 그런 아이가 자연을 제대로 느끼려니 버겁기도 하지만 참 고마운 시간들이다. 내게도 잃어버린 본성이 있다면, 그래 병아리들이 그러하듯이 찾아갈 수 있겠지. 그래서 점차 거름이 되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난 오늘도 그렇게 태어난 열다섯 병아리들에게 물과 밥을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