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이 고향이세요?”

2011-04-05     해남우리신문

송숙희(아이디어바이러스 대표·작가)


“해남이 고향이세요?”
일하는 와중에 미팅을 하다가 혹은 강의를 하는 중에 ‘집이 어디냐?’고 묻는데 답하다 보면 꼭 달려 나오는 질문이다. 뒤이어 이렇게 꼭 덧붙인다.
“아니, 고향도 아니고 연고도 없이 어떻게 거기 사세요?”
그렇다. 나는 서울내기다, 해남이 고향도 아니고 연고도 없다. 하지만 해남, 고향, 맞다. 내 작품들이 잉태되고 태어난 곳이니 말이다.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한 만 5년 동안 열 권이 넘는 책을 썼다.
산술적으로 한 해에 두 권씩 따박따박 책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내가 부지런히 썼다기 보다는 집에서 바라보이는 문필봉과 군립도서관 덕분이라고 나는 믿는다.
마치 붓끝처럼 뾰족한 삼각형으로 오롯이 서 있는 한 채의 산을 문필봉이라고 하며 문필봉이 바라보이는 근방에서는 반드시 필명을 떨치는 이들이 산다고 한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유적지에서도 해남이 자랑하는 고 고정희 시인과 고 김남주 선생의 생가에서도 이 문필봉이 보인다.
처음 해남에 작업실을 마련할 때부터 나는 이 문필봉이 좋았는데 그예 글쓰는 이로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문필봉이 내 작품들의 아버지라면, 해남군립도서관은 내 작품의 어머니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서 여고시절 3년을 보낸 나는 그 무렵, 인근 정독도서관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대학에서도 도서관은 내 놀이터이자 데이트장소였으며 문학도의 꿈을 키운 곳이었다. 이 도서관밝힘증은 사회생활을 하는 내내 계속 되었다.
사직동 어린이 도서관, 여의도 국회도서관, 반포의 국립중앙도서관은 물론 크고 작은 사립도서관들을 찾아다니며 남다른 정보를 뒤지며 글 밥 인생을 꽃피웠다.
기벽치고는 아름다운 기벽이랄 수 있을 도서관밝힘증은 해남에 작업실을 내며 끝인 줄 알았다. 내가 해남에 작업실을 낸 것은 도서관이 있음직한 문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란 짐작에서였으니까.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해남군립도서관은 그런 나를 골려주듯 위풍당당하게 나를 맞이했다.
주중 이틀은 서울에서 일을 보고 남은 시간 해남에 체류하는 것이 내 생활패턴이다. 그 중 많은 시간을 도서관을 오가며 산다.
만일 해남이 나에게 청정자연만 선물했더라면 나는 아직 덜 푼 짐을 다시 서울로 보내버렸을지 모른다.
도서관이 있었기에, 서울의 여느 지자체 도서관 못지않은 군립도서관이 있었기에 한 해 한 해 해남에서의 시간은 늘어갔다. 또 한 권 한 권 나의 저서가 늘어갔다.
그 사이 한 뼘 한 뼘 작가로서의 내 위상도 커져갔다. 나를 해남에 매어놓은 군립도서관의 자랑거리는 단연 보유하고 있는 장서의 숫자다.
내 책들은 주제를 떠받드는 풍부한 사례와 에피소드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평을 받는데, 그 많은 사례들과 에피소드들을 채집한 곳이 바로 이 도서관이다.
9만여권의 장서, 5천여점의 전자자료들 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내 책에 쓰기 좋은 데이터를 발견할 때마다 ‘심봤다’가 따로 없다. 물론 도서관에 없는 책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 당장 눈앞에 없다뿐이지 이삼일이면 그 책들은 내 손안에 들어온다.
정부에서 마련한 책바다서비스를 이용하여 전국의 다른 도서관으로부터 공수 받아보는 덕분이다.
이때 군립도서관은 대출인인 나를 보증하는 기관이자 책을 주고받는 거점도서관이다.
무엇보다 나를 의기양양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반도의 맨 끝 도서관에 앉아 국회나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전자정보를 내 집필실에서 인양 열람하고 출력한다는 점이다.
그 자료 수는 무려 170만여 건이나 된다. 그것도 원문자료가. 책이면 책, 자료면 자료, 할 것 없이 연구과정 전반에 걸쳐 그 어떤 소스도 의문도 제깍제깍 해결해준다.
이러니 집필하는 동안 말 그대로 몰두할 수 있다.
장서가 많다는 것과 함께 군립도서관의 서비스는 내가 언제든 이용하기 편하게 배려한다는 점도 내가 손꼽는 자랑거리다.
모든 관공서의 일과가 끝난 시간에도 도서관은 열려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도서관을 이용하는데도 불편이 없을 정도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열람하게 되어 언제든 어디서든 장서를 활용하도록 순발력이 강화됐다.
마지막으로 군립도서관이 마치 내 집 집필실처럼 기능하고 내 책들을 탄생시켜준 결정적인 것은 근무자들의 서비스마인드다.
친절함을 너머 명색이 작가인 내가 집필함에 있어 필요한 것, 원하는 것을 전천후로 서비스해준다.
군립도서관이 연속 대통령상, 문체부장관상을 수상한 것은 도서관의 장서나 운영매뉴얼과 같은 것이라기 보다도 친절하고 열심인 운영진덕분이라고 나는 철석같이 믿는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을 다녀왔다. 거의 매일 오가며 장서를 살피는데도 숨어있던 근사한 책 두 권을 골라 횡재한 기분이었다.
그 많은 장서들 속에 내가 읽어야 할 책들이 또 얼마나 숨어 있을까,
생각하면 발길을 돌려 다시 도서관으로 향하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