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희망의 불빛

2011-04-26     해남우리신문

1500여년 전 그레고리 교황은 고해가 필요한 죄악을 이야기 하였습니다. 그 후 교회는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야 하는 인간 내면의 본성을 가르쳤습니다.  탐욕, 탐식, 음욕, 나태, 교만, 분노, 시기 등이 그것입니다. 대신에 금욕, 절제, 순결, 근면, 겸손, 인내, 이해 등을 우리가 추구해야 할 덕목으로 가르쳐왔습니다.
수년전 바티칸 내사원(內赦院)의 지로티 주교는 교회가 새롭게 가르쳐야 할 죄악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습니다.  환경 파괴, 윤리적 논란의 소지가 있는 과학적 실험, DNA조작과 배아줄기세포 연구, 세계화를 통한 소수의 과도한 축재와 다수의 궁핍 등 심화되는 양극화, 마약 복용, 낙태, 소아성애(小兒性愛) 등이 그것입니다. 이것들을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할 새로운 악으로 교회가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악들은 마약 복용과 소아성애를 제외한다면 과학과 기술의 발전, 그리고 자본주의과 함께 생겨난 부산물입니다. 레이첼 카슨이 봄이 와도 새가 울지 않는 세상을 생각하며  ‘침묵의 봄’을 쓴 지도 오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환경 파괴는 지칠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습니다. ‘도둑맞은 미래’, ‘불편한 진실’ 등 수 많은 환경 파괴의 실상을 알리는 책들이 우리의 양심을 깨우고 있지만, 국익과 편리를 앞세운 논리가 지배적인 현실입니다.    
환경 파괴 주범 중의 하나가 핵입니다. 나가사끼,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은 일본의 히로히토로 하여금 무조건 항복으로의 결단을 내리게 했습니다. 그 후 미․소 양국은 경쟁하듯 핵폭탄을 제조하였고 여러 나라들이 뒤를 이었으며 북한도 이 대열에 합류하려 합니다.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영국, 일본과 우리나라 등이 이 핵을 에너지원으로 개발하여 핵발전소를 짓고 전력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70년대 말의 미국의 스리마일, 80년대 중반의 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소강상태에 있던 중 금년 봄 일본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핵의 위험성을 다시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핵의 안전은 핵을 통해 이익을 얻는 자들만의 허구입니다. 자연이 가르쳐주는 교훈을 무시하고 이익 논리로 현재의 편리만을 추구할 때 그 끝은 신의 심판 이전에 인간 스스로가 자초하는 멸망입니다.
정부는 고준위 방사능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차기 정부로 미루려는 듯이 보입니다. 경주의 저준위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은 벌써부터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고준위 방사능 처리장 건설 위치 선정이 얼마나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지 에 대해 장고하면서 선거를 의식할 때, 현 정부에게 이 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느껴질 것입니다.
후손의 미래를 우리가 도둑질할 권리는 없습니다. 현재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미래의 후손과 모든 자연 세계에 우리의 불편함을 전가할 권리는 없습니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현재의 생존을 위해서 후손의 권리를 제한하는 계약은 무효임을 말합니다.
우리가 칠흑 같은 밤을 걸어갈 때, 수 십리 먼 곳의 가느다란 불빛 하나는 우리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는 희망의 표지가 됩니다. 불편하지만 우리가 현실을 직시하고, 자연의 미래 회복을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것부터 보고, 판단하고, 실행한다면 우리는 미래를 비추는 희망의 불빛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