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은 영원한 민족의 영웅이다

2011-05-03     해남우리신문

홍형덕(충무공명량대첩유적보존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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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탄신 466주년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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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은 466년 전인 4월28일 자시에 서울 건지동(현 중구 필동)에 있는 자그마한 집에서 덕수이씨 후손인 문정공파 5대손으로 탄생했다.
공은 문과 무를 겸한 인격자이고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공훈을 세운 영웅이다.
지금 우리의 정국을 살피건대 남북관계, 국가안보, 경제위기, 국민동서화합, 실업사태, 국민 상호불신 등 뒤숭숭하다.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충무공의 리더십이요 충무공 정신이다.
요즘은 공과 같은 민족정기와 위국충정, 민족지도 정신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실로 우리민족이 가진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위대한 지도정신이 면면이 이어오고 있음을 본다.
또한 그 정신적 전통은 매양 어렵고 무서운 고비를 만날 적마다 가장 힘차고 빛나게 발휘되는 것임을 본다.
우리는 우리 역사상 그 지도정신의 가장 대표적인 발휘자가 다름 아닌 충무공인 것을 발견한다.
그를 통해서 발휘된 우리민족 최고의 지도정신을 파악할 수 있는 그것을 더 귀하게 여긴다.
지도 정신이란 그 민족과 역사를 이끌고 나가는 광명하고 영광스러운 도표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일찍이 충무공의 이름 앞에 민족의 태양이요, 역사의 면류관이라는 말로 예찬사를 바쳐왔다.
충무공은 민족의 대의실현과 동시에 인간으로서의 대 인격자이므로 우리는 공에게 성웅이란 칭호를 바치고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낀다.
466년 전에 태어나 공을 임진왜란이란 범국가적 위기에서 민족을 구출한 역사적 위인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공은 실로 우리민족의 전통적 대이상의 화신이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해 구원된 세대에 영생하고 있는 민족지도정신 그 자체인 것이다.
우리의 속담에 큰 나무는 바람을 많이 맞고 큰 고기는 험한 파도를 헤쳐 나가고 큰 위인에게는 상대가 있다고 했다.
공자에게 퇴란 자가 있어 공자가 앉았던 자리라고 그곳의 나무를 찍어 버리기까지 했다는 일과 충무공에게는 원균과 같은 사람이 있었던 것을 헤아려 보면서 그 일련의 사실들은 결코 어떤 개인 대 개인의 관계가 아니라 실상 정의와 불의의 대결이랄까.
혹은 진리에 대한 사도(邪道)의 시련이랄까 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려니와 과연 충무공은 정의와 진리의 보행자인 그대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가장 대표적인 표본이었던 것이다.
이번 탄신 기념일을 앞두고 일제 총독부에 의해 덕수궁에 방치돼 있던 대첩비를 옛 터인 동해리에 69년 만에 이설하고 해남군과 문화재청의 협조를 얻어 새로운 성지를 세우도록 진행하고 있다.
1587년에 세워졌던 이 대첩비는 1942년 3월 민족말살정책 차원에서 일제가 철거해 서울 덕수궁에 방치했던 것을 해방 후인 1945년 10월 경에 지방유지(이벙기, 홍준홍, 전시열, 김대안)들이 상경해 우수영으로 옮겨왔으며 1950년 3월에 충무사에 대첩비를 다시 세웠었다.
다시 한 번 충무공탄신 466주년을 기념해 충무공의 정신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