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농사꾼을 보내며…
2011-05-24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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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어느 날 해남읍의 한 식당에 아내와 함께 점심식사를 위해 들어간 나는 유난히 눈이 맑은 한 초로(初老-적어도 나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의 아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일행들과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자꾸 눈길이 갔다.
결국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저 맞은편에 앉은 분 눈이 너무 맑은 분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내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그렇게 그날은 지나갔다.
그런데 그 분을, 그 눈빛 맑은 분을 다시 만났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다시 본 것이다.
수많은 만장과 함께….
아! 그랬구나. 그분이구나.
‘민중의 벗’ ‘영원한 청년 혁명가’로 불리며 평생을 가난과 벗 사귐과 사회운동을 즐기면서 사신 그분!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故정광훈님을 수많은 만장과 함께 5월 16일 다시 만났다.
내가 사는 농촌 경제구조는 소비하지 않으면 생산이 보장되지 않는 선 소비 후 생산 경제구조이다.
그런데 농산물 가격은 수년째 파동과 폭락을 거듭하며 제자리걸음을 하는 반면 농사에 필요한 직접 생산재인 농기계, 자재, 농약, 비료, 연료, 종자, 인건비 그리고 간접 생산재라 할 수 있는 자동차, 자녀들 학비, 생필품, 주거시설 등은 매년 값이 오르거나 고급형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트랙터는 농촌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농기계이지만 점점 커지고 점점 고급사양으로 바뀌고 있다. 자동차가 그렇고 다른 생필품이 그러하다.
그러니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경지를 확보해야하고 더 많은 노동 시간이 필요하게 됨으로써 행복의 중요 조건인 문화생활은 TV시청이 전부이며, 나 자신을 기르며 재생산을 위한 휴식과 공부할 시간, 특히 연대와 소통을 위한 배려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 자신의 삶도 즐길 줄 모르는 이에게 자신의 행복만을 찾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남의 아픔과 기쁨까지 더불어 함께하며 사신 분.
농촌에 젊은이들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상과 민족의 생명과 직결되는 주곡 농업을 살려내기 위해 애쓰셨던 전국 농민회 총연맹 의장.
“나는 농사 질 농토가 없은 게로 평생 아스팔트 농사꾼이랑 게~” 농민을 대신해서 아스팔트에서 농민의 권익과 노동자와 약자의 인권을 위해서 평생의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분이.
아스팔트에서 목숨을 잃고 친구이자 동지인 故김남주 시인의 옆에 나란히 누웠습니다.
이 새벽, 오직 나 자신과 내 가족만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사회를 위해 뭐하나 제대로 한 것 없이 나의 주권만 요구하던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반성해 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