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특집 전통을 잇는 사람들 황산면 송호마을
2010-02-28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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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산면 송호리(이장 김충성). 마을입구에 장승과 솟대가 세워져 있는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인 장승과 솟대에 대한 믿음이 상당하다.
또한 해남에서 유일하게 장승과 솟대가 남아있고 그것을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송호리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을 잘 모셔야 마을이 안녕하다며 마을이 생긴 이래 지금껏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제를 모시고 있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제 형식은 간략화 됐지만 정성만큼은 변함이 없다는 게 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또한 수백년 동안이나 마을에 내려오는 거릿제 날을 아예 리민의 날로 정해 전 마을민들이 음식을 나눠먹으며 마을의 안녕을 축원한다.
110세대 285명의 주민들이 거주하는 송호리는 다양한 성씨가 분포돼 있지만 단합이 잘되는 마을로 알려져 있다. 매년 지내는 거릿제가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마을민간의 연대의식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송호리는 새벽 1시에 지내는 장승제를 위해 동네 사람 중 생기복덕이 맞는 사람을 제관으로 선출한다.
목욕재계한 제관은 장승과 솟대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금줄을 둘려 친 후 그 안에서 각각 제를 모시게 된다. 이때 제물을 장만하는 아주머니도 생기가 맞아야하고 목욕재계 한 후 제물을 준비하고 제사당일 제관을 도와 제상을 놓는다.
제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은 회관에 모여 제 음식을 나눠먹고 약간의 음식은 장승 옆에 묻는다.
이곳 장승과 솟대는 나무로 제작된 관계로 대개 3년마다 새로 만들어 세웠고 마을 목수들이 직접 제작했다. 그러다 6년 전에 잘 썩지 않는 은행나무로 장승을 만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때 장승 이름도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었던 것을 북제협재장군, 남제여장군으로 바꿨다. 현재 장승 앞에 놓인 제단은 본래 없었던 것인데 3년 전 칠순을 맞은 민금례 할머니가 그 기념으로 기증한 것이다.
송호리 솟대와 관련된 오래된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시대 몽고가 침입하자 이에 항거한 삼별초가 진도로 들어가 그곳을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남해안의 재해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고려정부의 명을 받고 파견 나온 김방경에 의해 삼별초는 진압되기에 이른다. 삼별초를 진압한 김방경은 송호마을에 와서 성을 쌓고 병영의 문 좌우에 솟대를 세운 후 국사봉에 철마산성을 만들어 제를 지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송호리 주민들은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문을 낭독하고 마을민이 모여 음식을 나눴다는 이야기다. 김희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