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의욕을 불지르는 보조사업을

2011-06-28     해남우리신문

- 박상일(지역활력연구소 소장)


농민들에게 영농의욕을 북돋워주고 농업경쟁력을 높이려고 지원하는 농업보조사업이 역효과를 나타내자 전라남도가 농업보조사업을 융자사업으로 전환시키겠다고 한다. 하지만 전라남도는 병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은 채 융자사업만을 처방으로 내세우고 있어 더 큰 역효과를 예고하고 있다.
농업보조사업은 대부분 시설사업이라서 농가별 용도와 안 맞는 게 태반이다. 품목에 따라, 기술에 따라, 사업 규모에 따라, 기존 시설의 제원에 따라, 농가 경영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몇 가지로 한정된 시설이나 표준설계에 따르다 보니 입에 맞을 리 없다. 농업보조사업은 대부분 일회성사업이기 때문에 농가경영구조와 엇박자를 이룬다. 사업을 풀어 나갈 연차별 순서에 맞춰 시설해야 할 것을 내년에는 지원이 안 될지 모르니 우선 따내고 보자는 식이어서 도리어 사업의 장애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또 농업보조사업이 시설사업 쪽으로 쏠리다 보니 농민들이 사전에 사업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을 놓치기 쉽다. 게다가 기술 개발, 홍보·유통, 컨설팅 등 소프트웨어 분야 지원은 지극히 인색하여 실제 농가경쟁력 향상과 겉돌고 있다.
그렇다면 농업융자사업이란 처방은 옳은가?
이 처방은 농업의 공기능을 축소시키고 중소농을 더욱 소외시킬 우려가 크다. 융자사업이란 본시 이익을 내서 갚으라는 방식인 만큼 직접 이익을 내지 않은 사업이나 농민은 융자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농업은 당장 돈이 되지 않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하는 경우가 있고, 타 자원과 복・융합시키기 위한 사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공동체 기초사업 등이 필요할진대 어떻게 이들 사업이 융자대상이 되겠는가? 더욱이 융자사업은 중소농들에게 그림의 떡이 될 것이다. 효율성이란 잣대를 들이대고, 선택과 집중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혜택이 기업농이나 대농에 집중될 것이 뻔하다.
7년 전 경남 함양군에서 ‘1억 버는 농민 1백명 만들기’프로젝트가 벌어졌다. 농민 중에 1억원을 벌 재주가 있다면 누구든 도전할 자격이 부여됐다. 전략 품목이니 표준설계니 따지지도 않았다. 무슨 품목이든, 어떤 시설이든, 어떤 유통방법을 취하든 1억원 벌 계획으로써 타당성만 지니면 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행정의 지시만 따르던 농민들은 사업을 주체적으로 보듬어 갔고, 공급자중심으로 일하던 공무원들은 농민들을 뒷바라지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사업을 시행한지 4년만에 1억원 버는 농민이 256명으로 늘었고, 이에 고무된 함양군은 2020년까지 1억원 버는 농민 1000명 만들기에 들어갔다.
이렇듯 공급자중심의 보조사업이 수요자중심으로 바뀔 때 성과가 얼마나 크게 나타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농업보조사업을 농민이 선택한 기술에 따라, 농민이 선호하는 경영방식에 따라, 농민에 알맞은 경영규모에 따라 지원사업이 달라야 한다.
맞춤형 지원이 되려면 지원할 예산 규모에 적합한 포괄적 공모사업을 벌이면 된다. 획일적인 건수별 지원을 지양하고, 사업가지 수가 몇 개든지 타당성이 있으면 포괄적으로 지원해야 농민에게 힘을 줄 수 있다. 또한 농가별 사업 전개방식에 따라 연차별로 지원해야 한다.
여기에다 또 하나의 요소가 첨가되어야 한다. 성실한 실패에 대한 관용이다. 우리나라 농업투자의 성공률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거꾸로 보자면 농민은 50% 이상의 실패를 각오하고 투자하는 셈이다.
행정은 실패의 부담을 농민 몫으로 돌릴 뿐 ‘40~50%를 보조했으니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이제는 보조사업을 성실하게 이행하고도 실패한 농민들을 찾아 재기할 용기를 주어야 한다.
농민이 최소한 세 번까지 도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만 농민이 농업에 진실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실리콘벨리가 세계 최고의 IT집적도시가 된 가장 큰 힘은 실패에 대한 관용이었다.
더 이상 농민들의 힘을 빼는 농가보조사업은 거두어야 한다. 보조사업이 농민들의 생산의욕을 북돋우고 경쟁력을 키워주는 활력사업으로, 농민의 의욕을 불 지르는 밑불사업으로 탈바꿈해야 농업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