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모님 농번기

2011-07-12     해남우리신문

80이 넘으신 어르신들이 평생 해 오신 일에 손을 놓지 못하신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를 못했는데 시간을 내어 시어른들을 뵙기로 했다.
지난 장날 장을 본 찹쌀과 떡국, 뻥튀기한 과자와 오리, 벙구나물을 챙겨들었다.
농삿일로 지치신 시부모님께 오랜만에 맛있는 오리죽을 쑤어드리고 싶었다. 시댁 마당에 들어서자 마늘대를 자르고 계시던 어머님이 반갑게 맞아주시며  “니 왔으니 인자 밥 묵어야겄다.”하며 서둘러 일어나 반기신다. “아부지 저 왔어요” “오냐, 그래 오서오니라.”하며 반기신다.
식사를 마치자 언제나처럼 금방 사라질 며느리를 위해 “완두콩 따줄게 쪄먹을래. 마늘 줄게 차에 실어 놓거라. 짱아찌 마늘 좀 주랴.” 하시며 이것저것 챙기시느라 분주해지신다. “아니요 됐습니다. 그냥 쉬세요.” 해도 그렇게 또 바쁘시다.  
미안함이 썰물처럼 내 마음을 싸하니 쓸어간다. 언제나 난 바쁜 며느리였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어머니 오리 좀 안쳐놓구 같이 하시게요.” “오늘은 안 바쁘냐?” “네.” 나의 쾌활한 대답에 너무 좋아하신다.
“완두콩 쪄주면 혜인애비가 참 잘 먹는다. 이거 갖다 쪄주거라.” 하시며 따신다.
그러다가 나를 쳐다보시더니 인제 가지고 가라하신다. 늘 온 걸음에 바로 갔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어머님이 친정 엄마처럼 정겹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어무니 마늘값 콩값은 허구가야죠. 가위 어디 있어요?” “응? 호호. 혀주고 갈래.” 하신다.  
“됐다. 먼지도 많구, 손도 아프니 내가 할란다. 놔둬라.” 하신다. “아니 씻으면 되구, 빨면 되지요.” “그려, 호호호. 그럼 해봐라.”
얼른 끝내고 보니 모판에 모가 예쁘게 자라 마당에 펴야 될 것 같다. “아부지 모판 펴게요. 제가 도와드릴게요.”했더니 아버님도 너무 좋아하신다.
세 개씩 들어 마당에 줄을 맞추려니 여기다 줄을 잘 맞추라며 소리를 지르신다. 분명 나는 잘 하고 있는데…. “아, 여기다 놓으란 말이다.”라며 또 소리를 지르신다.
“아부지 나도 잘 해요. 낼모레면 50이랑게요. 아부지 제가 애기 같아요?” 그래도 또 소리를 지르신다. “아부지 그람 나 놔두고 가버리요잉.” 했더니 “아니 아니, 알았다.”하시며 웃으신다.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나 한바탕 웃음바다를 만드니 훨씬 힘들지 않고 재미가 있다. 아마 며느리가 일에 가세하니 너무 힘이 나서 젊은이처럼 큰소리를 내셨을 것이다.  
난 모판을 나르고 아버님은 펴신다. “끙끙” 힘들어하시는 게 역력하다.  
어머님은 “아니 힘은 며느리가 다 쓰고 있고만 왜 당신이 소리는 다 내요.” “아 어무니 아부지가 저를 얼메나 아끼시면 소리내는 것도 힘들까봐 제 대신 소리 내주시겠어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아버님은 “맞다. 그래 맞다.” 하신다.
아버님, 어머님 이렇게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은가 봐요. 마음 한 번 먹으면 이렇게 웃을 수 있는데요. 가까이 살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정말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동안 제가 너무 바쁜 척 살아왔나 봐요. 이제 자주 찾아뵐 게요. 늘 건강하세요. 그리고 저희 곁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