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참전용사들의 아픔 -양현승(베트남참전유공전우회 해남지회 고문)

2011-07-29     해남우리신문

이역만리 타국에서 치렀던 베트남 전쟁, 파월 참전용사들은 살아서 고국에 돌아갈 날만 꿈꾸며 비참한 전쟁에 임했습니다. 우리는 정글 속에서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 매복과 전쟁으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우기철의 매복근무는 물에 흠뻑 젖은 그야 말로 참담한 생활의 반복이었습니다. 지금도 몸서리쳐지는 기억입니다. 생사가 오가는 위험한 전쟁터에서 젊은이들은 목숨을 건 채 오로지 내 조국의 국위와 세계평화를 위해 싸웠습니다.
전방도 후방도 없는 전쟁터, 우리들은 항상 적의 표적이었고 그래서 늘 발사준비를 한 채 불안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우리 참전용사들이 목숨 걸고 전투에 임하고 있을 때 국민들도 우리를 염려했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베트남 파병당시인 1963년 우리나라의 경제실정은 너무도 어려웠습니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보릿고개라는 참담한 현실에 6․25전쟁의 후유증까지 겹쳐 우리나라는 세계최하위 경제빈국이었습니다.
그러나 베트남 파병은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하는데 큰 보탬이 됩니다.
파월장병 전투수당과 기술자 노임에 9억 달러, 대미차관 27억 달러, 미군부대 주둔수익 8억 달러, 군원 이관 중지수익 9300만 달러. 기타 수익 600만 달러, 제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중 경부고속도로 건설, 구미수출공단 건설 등 한강의 기적을 이룩하게 됐습니다.
세계 11위라는 경제대국으로서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 뒤에는 베트남 파병장정들의 피와 땀이 있었습니다.
8년8개월이란 기나긴 베트남 전쟁 시 파월장병 32만명 중 전사자는 5100여명, 전상자 1만1000여명, 종전 후 귀국한 참전용사 중 12만여명이 고엽제 후유증 또는 후유의증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까지 고엽제 피해는 참전용사들의 몸에서 나타나고 있는 등 고엽제 피해 후유증 환자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베트남참전 전우들의 아픈 마음을 달랠 길 없어 오늘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더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참전용사들이 국민의 기억 속에 사라지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다행이도 금년 6월30일부터 국가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참전전우들의 명예 회복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겉만 화려한 국가유공자일 뿐 속빈 강정이나 다름이 없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기 힘이 듭니다.
국위를 선양하기 위해 목숨을 던진 참전용사들, 전쟁터에서 전우가 피 흘리며 쓰러지고 적의 시체를 밟고 넘나들던 생활을 했던 우리들은 지금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 힘듭니다.
참전용사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는 없을까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도록 정부는 최선의 대책을 해주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명예롭고 위대한 참전의 역사가 있었고, 그것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이 먼 훗날 우리의 역사에 남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