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희망이다 ① 해남 장인을 찾다 옥공예 대한명인 김육남씨
2010-03-03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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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옥공예 장인인 김육남(56)씨는 사단법인 대한명인 문화예술교류회로부터 최고의 영예인 대한명인으로 추대돼 지금껏 옥공예를 지켜왔던 보람을 느꼈다.
18세에 그냥 옥이 좋아 고향인 강진을 떠나 옥동으로 이사 오게 됐다는 김 명인은 지난 40여년 간 옥만 다뤄온 해남 옥공예의 산증인이다.
전통볏짚공예를 하던 아버지의 손재주를 물려받았다는 김 명인은 초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과제물로 옥도장을 만들어 제출했을 만큼 옥과의 인연이 깊다.
초등학교를 졸업 한 후 줄곧 해남 옥으로 작품을 만들던 그는 본격적인 옥공예를 배우고자 황산 옥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승 없이 무작정 그림책 도안을 보거나 선배견습생들의 작품을 곁눈질하며 옥공예를 만들어온 김 명인은 5년 동안 견습공으로 일한 뒤 지난 1975년 화신공예라는 자신의 공장을 설립했다.
12지 동물에서 사군자 등 새기지 못하는 문양이 없을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던 그는 70년대 하루 2~3시간만 자고 일을 해야 했을 정도로 주문이 밀렸었다고 한다.
특히 김 명인은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옥공예품을 밑그림 없이 1도1각의 기법으로 순식간에 작업을 마치는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는 용 조각에 가장 자신이 있는데 향로와 낙관, 항아리 등도 고객들이 선호한다고 말했다.
옥공예를 아끼고 사랑하는 그지만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고가의 옥공예품이 사양산업으로 접어들면서 한때 50여 명이던 기능인들이 지금은 5명만이 남아 있을 정도로 힘든 현실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김 명인은 최고의 품질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냥 옥이 좋아서 시작한 길. 김 명인은 해남옥의 우수성과 작품성을 아는 고객들이 있는 한 작품 활동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희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