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20년만의 편지네요-정춘자(현산중 교사)

2010-02-22     해남우리신문

학창시절에 ‘부모님전상서’로 시작하는 편지 쓴 이래로 아버지께 편지 쓰는 건 20여년 만에 처음이네요. 환갑 넘기신 후부터 약주 드시면 한탄하시듯 “자식이 여럿이어도 나 죽으면 묏자리 잡고, 택일할 자식 하나 없다”며 말씀하시길 벌써 20여년. 팔순 중반을 넘으신 아버지의 한탄이 이번 겨울에는 갑자기 가슴에 와 닿아 얼떨결에 가까이에 사는 제가 배우겠노라고 겨울방학 연수도 포기하고 아버지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그 동안 아버지께 맛난 것 사드리고, 용돈 드리고, 찾아뵈며 하노라고 했던 효도는 다 빈 껍데기 같은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국어교육과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께서 한학을 가르치려 시도했었지요. 맞아요. 명심보감(銘心寶鑑)이랑 대학(大學)이랑 주역(周易)을 그 때 배웠던 기억이 나네요. 그 때 외운 주역 64괘를 아직 절반은 기억하고 있던 덕분에 이번에 좀 쉽게 외웠습니다. 그 때는 그 공부가 고리타분하고, 비현실적이고 심지어는 비민주적이어서 역사발전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학문이라 생각했지요. 마음에 도무지 와 닿지 않는 대학을 어렵게 외우고, 주역을 좀 배우고 나서는 아버지께 “뭐예요? 이거 점치는 거잖아요.”하고는 서법(筮法)을 배우자마자 공부를 아예 외면해 버렸지요.
작은 오빠에게 전수하시려다 오빠가 서울로 이사한 후에는 불가능하게 되어 아버지의 한탄은 더 깊어졌지요.
제 나이도 마흔 중반이 넘어서일까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는 속담이나 ‘진인사 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구절들이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짐작하게 되면서 비로소 주역에도 마음이 열리는 걸 느낍니다. 그렇지만 아직 작명이나 사주, 택일, 풍수를 아버지처럼 신봉하지 않으면서도 배우리라 마음먹은 건 아버지께서 떠날 것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걸 이제야 깨달은 건지도 모릅니다. 한편으로는 고문(古文)의 매력에 끌리기도 하고, 부쩍 한자 공부에 재미를 느끼기도 하고요. 경서(經書)를 읽는 틈틈이 아버지께서 평생 쓰시던 사주책이 낡아 바스라져서 자료 보존도 할 겸, 한자 공부도 할 겸 해서 전산입력 작업을 시작한 지 두 달 째. 얼마 전에는 어쩌다 새벽 4시에 깨어 아버지께서 군데군데 토달아놓은 걸 확인하며 입력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던지 한참을 울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원하신 게 이것이었구나. 내가 이 공부 다 하면 이제 맘 편히 가시겠구나. 이렇게 재미나서 공부하면 아버지 더 빨리 가셔버릴까? 아아, 어떡해야 할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 듯 먹먹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아직 아버지께 배울 것이 많아요.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키우며 가르쳐주셨지만 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서 제 안에 고여 있는 게 없거든요.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께선 이제 배우기 시작하는 막내딸 두고 그리 쉽게 떠나시진 못할 거예요. 사주책은 그래도 읽을 수는 있었지만 아버지께서도 아시다시피 작명책은 반자(半字), 초서(抄書) 투성이라 제가 혼자서는 거의 읽을 수도 없다는 걸 아시니 그거 다 전산 입력하려면 1~2년으로는 어림도 없고, 산리는 직접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보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하셨으니 산 타려면 더 건강해지셔야 하고요.
올 봄 산 오를 때 아버지 손잡고 올라갈래요. 아버지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