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밤 거리의 여인

2010-03-06     해남우리신문
영하 15도의 겨울 날씨에 바람은 쌩쌩 귓전을 때리고, 해는 저문 지 벌써 오래인데, 밤 8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경기도 일산에서도 아주 끝자락 벽제부근, 인가가 드문드문한 한적한 시골 어느 마을길, 인적도 전혀 없는 그런 곳을 겨우겨우 알아내어 남은 일처리를 막 끝내려는 시각이었습니다. 간간이 서있는 가로등 아래서 어느 중년 여인이 내 차에 손을 흔들며 차를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저 좀 태워주실래요?”
“누구신데…. 어디로 가시는데요?”
“일산 쪽으로 가려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버스가 안 와서요.”
그때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얼른“아~그쪽으로 가는 길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때 거울에 비친 그 여인의 낙담한 표정을 뒤로하고, 나는 그냥 당황스럽게 바쁜 척 그 자리를 피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태워줬다가 돌변하여 성추행을 당했다느니, 돈이 없어졌다느니 하면 어떡하지? 하지만, 추운 곳에서 떨고 있는 여인을 생각하면 또 마음이 짠해오고, 아, 어쩌다 마음 놓고 선행도 베풀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렸나.’ 서울로 돌아오려면 일산을 지나 와야 하는데도 그 여인을 태우지 못하고 돌아오는 내내 심한 갈등과 미안함에 휩싸여야 했습니다.
어쩌면 그 여인은 차가 간절히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너무 오버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다 이렇게 사람을 못 믿는 세상이 되었는지. 난 또 그런 세상에 물들어 사는지 그게 슬퍼서 그날 밤 술 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