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한국 최고의 신문이 되고 싶은가?

2011-11-11     해남우리신문

박상일(지역활력연구소 소장)


나는 지난 97년까지 7년 동안 한 지역신문 편집국장으로 일했다. 우리는 그 때 신문사 벽에다 ‘세계 최고의 신문을 만들자’란 구호를 내걸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아니 광주일보나 동아일도도 꿈도 못 꾸는데 그 신문들의 50분의1, 100분의1도 못된 주제에 세계 최고의 신문을 말하다니…” 비웃었다. 우리 신문사 사원과 이사들마저도 허황된 꿈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틈틈이 신문사 임직원들에게 왜 우리가 세계 최고의 신문이 될 수 있고, 또 그걸 지향해야 하는지에 대해 역설했다. 세계적인 신문이 되는 키포인트는 그리 복잡한 논리가 아니다. 신문의 본질에 충실한 신문이 세계적인 신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신문의 본질에 충실한 신문이 드물다는 얘기다. 신문의 본토인 서양에선 신문학을 커뮤니케이션학이라 부른다. 사람 간 소통이 신문의 본질이고 소통을 잘 실천하는 신문이 올바른 신문이다.
지역신문은 중앙지나 지방지에 비해 독자와 거리가 가장 가깝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지역신문이 독자와 잘 소통하고 주민의 참여도를 높이면 한국 최고는 물론 세계적인 신문으로써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주민중심의 신문이 되려고 몸부림한 3년 쯤이 지나자 우리의 사례가 학계에서 연구대상으로 떠올랐다. 아시아 언론학회지 1면에 우리 활동상이 소개되고,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며 한국 최고의 지역신문으로 인정받았다.
지난 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전국의 지방일간지와 지역주간지들이 참여한 ‘2011 지역신문 컨퍼런스’가 있었다. 그런데 이 행사 공모에 든 몇몇 지역신문들 사례가 유난히 돋보였다. 초중고생들의 창의적 체험활동을 이끈 군포신문, 지역콘텐츠 개발에 발 벗고 뛰는 원주투데이, 고장의 공동체기업을 촉발시키는 용인시민신문, 소외층들의 여론을 떠 올리는 진안신문의 사례가 그것이다. 이들 신문사례의 공통점은 신문이 주민 참여의 장이 되고, 지역 내생적발전을 촉발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다. 20년 전 내가 간절히 꿈꾸던 일들이 전국 곳곳의 지역신문들에서 움트고 있다니 감개무량했다.
이번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우리고장 해남우리신문의 ‘마을에서 희망을 찾다’라는 사례가 우수상을 차지했다고 한다. 해남우리신문이 주관한 ‘마을로 찾아가는 희망포럼’과 ‘마을 음악회’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창사 1년 만에 전국의 지방일간지, 지역주간지들 경쟁에서 우수상을 차지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한국 지역신문의 씨앗을 던진 한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축하해 마지않는다. 이번의 상은 권위주의에 물들지 않고 주민 속에서 주민과 더불어 희망을 일궈가는 일이 지역신문의 정도이자 영광의 길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18년 전 내가 미국 워싱턴의 한 흑인신문을 찾았을 때 그들은 범죄기사를 싣지 않는 것을 최고의 자랑거리라 했다. 백인신문들이 흑인들을 범죄의 대명사로 떠 올리기 때문에 백인들의 왜곡된 의식에 대항하면서 아름다운 흑인공동체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는 흑인신문이 멋지게 장식한 백인신문을 흉내 내지 않고 철저한 흑인의 관점에서 흑인의 이익을 대변하겠다는 의지였다.
지역신문은 중앙지나 지방지의 뽀대나 폼 잡는 모습을 따라가선 안 된다. 철저하게 고장다움에 녹아져야 하고, 주민이익의 편에 서야 한다. 해남의 지역신문은 응당 해남공동체의 편이어야 한다.
때문에 스스로 늘 되물어 보아야 한다. 아직도 지역의 5% 주민만을 신문지면의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닌가? 주민의 억울한 일을 놓고도 신문이 객관성이란 미명하에 제삼자라는 포장속으로 몸을 숨기진 않는가? 주민들은 우매하기 때문에 신문이 늘 앞에서 끌어야 한다는 엘리트주의나 아카데미 논리에 포박되어 있지 않는가? 신문은 꼭 표준말을 써야 하고, 국어문법에 적합하게 구성해야만 하는가? 해남주민들의 삶의 때가 묻은 사투리를 배합하여 구어체로 기사를 쓰면 저급한 신문이 되는가? 화제거리를 쫓아 분칠하고 포장하길 즐기기 보다는 주민 삶 언저리의 감동스토리를 발굴하는 일이 더 보람되는 게 아닌가?
내가 지역신문계에서 한창 활동할 때 많은 지역신문 사장들이 컨설팅을 청해 왔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돈이었다. 지역신문이 어떻게 하면 수익을 높이고 흑자경영을 할 수 있을까였다. 나는 자신하여 말했다. “지역신문의 정도를 가시오. 주민 편에 서시오. 주민을 객이 아닌 주인공으로 등장시키시오. 그리하면 반드시 흑자경영을 합니다. 저는 그걸 확실하게 보증합니다.” 이 길이 곧 한국 최고의 신문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박상일 소장은 1990부터 7년 간 지역신문 편집국장으로 일하면서 언론악법 개정운동과 바른지역언론 연대를 주도했고, 한국 지역신문의 1세대 대표적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