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은 정년이 없다
2011-11-11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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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6일 ‘2011 중앙서울마라톤대회’에 참가해 백리 길이 넘는 풀코스를 4시간 19분에 완주했다. 조선일보사 주최 춘천국제마라톤 완주 후 2주만이다. 지금까지 풀코스 완주는 42회, 하프코스도 일백여회다.
비가 오는 궂은날인데도 2만여 명의 참가자가 풀코스에 도전했다.
알피니스트에게 무엇 때문에 산에 오르냐는 물음에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른다는 유명한 대답이 있다. 마찬가지로 누가 나에게 그 먼 길을 왜 달리느냐고 묻는 다면 ‘달리면 행복하기 때문이다’ 라고 답하겠다.
마라톤 대회에 나갈 때는 혼자일 때가 많다.
그러나 큰아들과 둘째까지 합세해 3부자가 뛸 때도 있었고 올해는 사관학교 학생이 된 손자까지 3대가 함께 뛸 때도 있었다.
내가 마라톤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참으로 우연이었다.
20여 전 잘나가던 사업이 부도 위기에 몰리자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시작했다.
한강 다리를 건너고 남산길을 오르내리면서 미친듯 달리노라면 지난날의 희노애락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처음에는 마라톤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정보도 없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무작정 달렸다.
이렇게 뛰고 난 후 샤워를 마치면 ‘살것 같다’는 묘한 기분에 행복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느끼는 아픔과 고통이 마치 마라톤에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마라톤은 정년이 없다
그러나 얼핏 들으면 동의어같은 아픔과 고통이 전혀 다른 감정임을 마라톤에서 깨달았다. 4시간이 넘도록 달리는 동안 수없이 되풀이 되는 ‘아 힘들다. 그만 포기할까?’ 하는 생각에는 아픔과 고통이 공존한다.
힘들다는 생각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의 아픔이고 포기할까 하는 감정은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고통이다. 처음 35km까지는 행복하고 기분 좋은 시간이다. 그러나 35kn를 지나 40km까지는 포기하고 싶은 고통의 연속이다. 나머지 2.2km 구간은 연습량의 다소를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이때는 한 걸음이 피니쉬라인만을 생각하는 극한의 상황이다.
그러다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느끼는 충만감이 주는 유혹 때문에 나는 또 마라톤에 도전한다. 비록 칠십 고령이지만 지금도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마라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젊은이의 실연이나 중년의 실직 같은 것, 혹은 노년의 질병처럼 피하고 싶지만 되풀이 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아픔과 고통 없이 마라톤 완주는 없다.
운명을 이겨내고 선택을 참고 견디는 자만이 승자가 되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으로 달리고 또 달린다.
특히 ‘성균관유도회’라는 어깨띠를 두르고 노익장을 과시할 때 도로변의 관중들로부터 많은 박수갈채를 받는다.
마라톤! 알 수 없는 마력에 나는 오늘 새벽에도 두 시간 남짓 또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