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신앙으로 싸웠던 마을들…

2010-03-13     해남우리신문
미륵이 마을 바라본다 눕혔다 세웠다 반복 분토·증산, 남천·온인, 금강·초호 설화 재밌다
현산면 분토마을 형국은 주머니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마을은 주머니 가장자리에 형성돼 있고 가운데는 집이 한 채도 없는 모양이 영락없이 여성의 성기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분토리와 마주보고 있는 신덕마을은 산이 뻗어 내려오다 두개가 둥그렇게 뭉쳐진 곳에 위치해 있어 남성 성기와 너무도 흡사하다고 합니다.
남녀가 마주보고 있으면 정말로 좋을 듯싶은데 이 두 마을은 그렇지 못했나 봅니다. 신덕마을에 홀아비가 많이 생기면 분토마을에 홀어미가 많이 생기고 한쪽이 잘되면 한쪽이 쇠락하는 등 영 맞는 것이라고는 없었다고 하니까요.
그런데 분토마을은 마주보고 있는 또 하나의 마을인 증산리와는 궁합이 좋았나 봅
민간신앙으로 싸웠던 마을들…니다. 증산리도 마을 형국이 남성을 닮았다고 합니다.
분토마을과 증산마을은 정말로 뜨거운 관계였나 봅니다. 마을과 마을 사이가 1km 이상 떨어져 있는데도 남녀 간의 사이가 어찌나 뜨거웠던지 한쪽 마을에서 불이 나면 어김없이 앞마을로 불이 번졌다고 하니까요. 남녀 간의 궁합이 잘 맞으면 정말 좋은 일인데 마을 사람들 입장에서는 근심이었겠지요. 언제 불이 날지 모르는 일인데다 앞마을 불이 반드시 자신들의 마을로 번져오니까요.
그래서 두 마을 사람들이 생각해 낸 것이 마을 앞 들녘에 남녀 돌 두기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정분이 나도 들녘 한가운데서 나니 마을까지는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이란 이유 때문이지요. 분토리 쪽에서는 여성을, 증산리 쪽에서는 남성을 상징하는 돌을 양쪽마을 중간 들녘에 서로 마주보게 세운 것입니다. 아쉽게도 여성을 상징하는 돌은 사라져 버렸고 남성을 상징하는 증산 쪽 돌은 홀로남아 외롭게 분토마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읍 남천리에는 여어쁜 각시 미륵이 길가에 서 있습니다. 정말 예쁜 미륵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쓸쓸한 모습입니다. 이 미륵과 마주보는 서방미륵이 있었습니다. 남천리에서 내사리 경계지점에 있었던 서방미륵은 각시 미륵과 마주보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서방미륵이 바라보고 있어 각시미륵 쪽 여자들이 바람을 피운다고 해 넘어뜨렸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도 전합니다. 서방미륵 때문에 남천리와 온인리 마을 간에 시비가 생긴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온인리에 사는 성한 사람이 갑자기 옷을 벗고 춤을 추는 등 정신질환 현상을 보였다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미륵이 서 있기 때문이라며 모두 몰려가 미륵을 눕혀버립니다. 미륵이 눕자 이번에는 남천마을에서 미친 사람이 생깁니다. 그러자 남천마을 사람들은 미륵을 다시 세웁니다. 미륵을 눕혔다 세우는 싸움은 계속되었고 결국 신랑미륵이 서 있는 고개를 낮추면서 두 마을의 우환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실지 이 고개는 낮추어졌고 그 과정에서 서방미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서방미륵이 서 있던 곳을 사람들은 당제거리가 일컫습니다.
서 있는 미륵 때문에 마을 간에 갈등이 있었던 곳이 또 있습니다. 읍 호천리에 있는 미륵불입니다. 지금도 두 동강이가 난 채 쓰려져 있는 이 미륵의 수난사는 이렇습니다.
이 미륵이 바라보는 남쪽마을에 좋지 않은 일들이 자주 발생합니다. 재앙의 원인에 대해 찾던 주민들은 호천리 미륵이 자신의 마을들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게 됩니다. 마을 사람들은 호천리로 달려가 그 부처를 쓰러뜨립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고도리에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고도리 사람들은 호천리로 달려가 미륵을 세웁니다. 세웠다 눕혔다가 반복되면서 커다란 미륵불은 두 동강이 나 지금도 일어서지 못합니다.
마을의 지형 때문에 솟대를 세운 마을도 있습니다. 송지면 금강마을은 개구리 형국이고 앞마을인 현산 초호리는 뱀의 형국이라고 합니다. 초호리 뱀은 항상 금강마을 개구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금강마을은 뱀의 기운을 막기 위해 솟대를 세웠는데, 대부분의 솟대가 오리모양이라면 이 마을 솟대는 황새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황새는 하늘을 날면서 뱀을 감시하고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금강마을에는 마을 안쪽을 바라보는 솟대와 초호리를 바라보는 솟대 2기가 서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이웃만큼 좋은 이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평상시 오순도순 잘 살다가도 이웃마을 때문에 피해를 입는다면 가만히 있을 마을이 없겠지요.
민간신앙이 뿌리내렸던 옛날 마을지형과 미륵 때문에 마을 간에 갈등했던 이러한 전설이 해남에도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