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 찾아서 ② 옥천 향촌 장근영 도편수
2010-03-26 해남우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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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목수가 도편수로 참여했던 건물만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금강골저수지옆에 있는 무안박씨 제각을 비롯해 계곡면 원진리의 원진사 요사채, 그리고 영암 구림 마을에 20여 채 등 지금까지 지은 집의 수효만도 600여 채에 이른다. 그야말로 도처에 장목수의 작품이 널려 있는 것이다. 특히 무안박씨 제각은 설계도를 쓰지 않고 자신의 구상대로 만든 작품이라 더 애착이 간다고 한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지 지
장인을 찾아서 ② 옥천 향촌 장근영 도편수금은 도편수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지금은 면허증이 있어야 공사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면허증 신청을 하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어 여의치가 않아 지금은 남의 일에 나가고 있다.
고향이 이북인 장 목수가 한옥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절집을 짓던 스승과의 만남이었다. 당시 장 목수의 고향집은 사랑방이 넓었는데, 그곳에서 기거하던 스승을 따라다니면서 목수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 때 월남을 한 장 목수는 옥천면 향촌에 자리를 잡고 평생 목수일만 해오면서 32명에 이르는 제자도 길러냈다. 모두 가정형편이 안 좋아 학교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예로부터 ‘큰 집은 무덤에 이르고 작은 집은 좋은 일을 부른다.’고 했는데, 요즘 정부 보조를 받는 집들은 모두 30평 이하짜리는 없을 정도로 규모가 커지고 있다. 실제 향촌 들녘에 위치한 장목수의 집은 18평짜리이다. 그러나 마당에서 바라보는 건물의 덩치는 훨씬 더 크게 보인다. 연장 창고에 들어가 자신이 쓰던 연장의 쓰임새를 하나하나 설명하던 장목수와 연장이 하나가 된 느낌이다. 장 목수의 손길에 닳아진 연장은 장목수를 닮아 늙었다.
한옥의 재료는 한국산 소나무를 제일로 치는데, 한국산 소나무는 단단해서 기둥의 지름이 20cm면 되지만, 외국산 소나무는 재질이 물러서 30cm는 돼야 한다고 한다.
목수라고 다 같은 목수가 아닌데, 목수의 세계 또한 서열이 엄격하다. 처음 목수일을 배우러 오면 추를 달아 도리(수직) 보는 일부터 시키는데, 그 다음 단계가 대패질과 톱질이다. 다음으로 4괘를 파고 재단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영리한 사람은 3~4년이면 숙련이 되지만 멍청한 사람은 40년을 해도 못 배우고 죽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가 먹줄과 수평을 잡는 단계이다. 역시 영리한 사람은 4~5년이면 되는데, 영암 구림에서 일하고 있는 전완종씨는 4년만에 먹줄을 잡은 사람이란다.
아직도 지나다니며 자신이 지은 집이 건재할 때 기분이 좋다는 장 목수는 견고하니 집 잘 지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가장 보람을 느낀단다. 장목수는 집주인을 가난하게 하는 5허(虛)가 있다고 말한다. 집이 큰 것에 비해 사람 수가 적은 것과 대문은 큰데 집이 작은 것, 담장과 울타리가 불완전한 것, 우물과 부엌이 적절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것, 집터가 지나치게 넓어 집이 차지한 터전보다 마당이 엄청나게 넓은 곳이란다. 이와 반대로 집주인을 부귀하게 하는 5실(實)도 있는데 집이 작은 데 비해 사는 사람이 많은 것, 집이 크고 문이 작은 것, 담장이 완전한 것, 집이 작으며 가축들이 많은 것, 수구(水溝)가 동남으로 흐르는 곳이란다.
박태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