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매광산 광부들 추모비 건립하자

2012-06-15     해남우리신문
옥매산은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가장 많이 간직한 곳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 아사다 회사는 이곳에서 납석을 채굴해 일본으로 반출해 갔다. 당시 옥매광산은 문내면과 황산면 사람들의 생계 유지터였다. 워낙 가난했던 당시 사람들은 이곳에서 광부로 일하며 생계를 꾸렸고 10대들도 이곳에서 일을 했다.  
1945년 3월, 해방 몇 달전 아침 일찍 광산으로 출근한 이들이 배에 태워졌다. 어디로 가는지, 왜 가는지도 모른 채 이들은 제주도로 끌려간 것이다.
제주도로 끌려간 이들은 집단생활을 하며 군사시설인 방공호를 파는 일에 동원됐다. 제주도에서 이들의 삶은 처참했다고 한다. 그러한 그들에게도 해방의 소식이 전해왔다. 이들은 8월 20일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다 추자도와 보길도 사이 바다에서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바다에 수장되고 만다. 225명 중 118명이 수장되는 대규모 사고였다.  
해남 사람 118명이 수장된 사건, 황산 문내지역에서는 한날 제사를 지내는 집이 한 집 넘어 한집이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시간이 흐르면서 잊혀져 갔다. 누가 사망했는지 사망자 명단도 없다. 보상도 없고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도 없다.
이런 때 옥매산 바위 정상에서 일제 강점기 때 묻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쇠말뚝이 나왔다. 그리고 오는 8월 15일 광복절 때 쇠말뚝 제거 행사와 함께 옥매산 광부들에 대한 추모비도 건립하자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해남사람들이 대규모로 희생된 사건을 해남에서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후손인 우리들의 당연한 몫이다. 그렇다고 거창한 비를 건립하자는 것은 아니다. 죽은 이들을 위로하고 후손들이 이 사건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건립하자는 것이다.
또한 당시 사망한 이들의 명단을 확인하는 일도 서둘러야 한다. 현재 문내면과 황산면에 거주하는 노인들 중 어렴풋하게 이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더 연로하기 전에 사망자 명단을 기록해야 한다.
당시 사망자 대부분의 후손들은 지역을 떠난 상태이다. 그렇다보니 민간인이 나서 이 사망자를 찾기엔 현실적으로 어렵다. 행정이 나서 사망자를 확인해야 할 이유이다.
추모비도 지역민들과 함께 건립하길 희망한다. 몇몇의 명망가 중심이 아닌 지역민들이 참여하고 애도하는 차원의 추모비 건립식이 된다면 더 값진 추모비로. 더 의미 있는 행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